쿠웨이트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페르시아만과 쿠웨이트 시가지. <사진 : 이용성 차장>

‘해안을 따라 대형 쇼핑몰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걷다 보면 푸른 바다 위에 하얀 점처럼 떠있는 요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요트들의 주차장인 마리나 뒤편에는 한 무리의 고층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곳곳에 늘어선 야자수와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 온화하고 쾌적한 날씨 속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긴다.’

지중해나 캘리포니아 남부 휴양도시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달 다녀온 중동의 석유부국 쿠웨이트 이야기다.

‘중동’이란 말에 열기 가득한 사막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열사(熱沙)의 땅이라고도 불린다. 여름에는 낮 기온이 50도를 대수롭지 않게 넘나들곤 한다.

여러 해 전 여행을 다녀온 두바이에서 그 열기를 온몸 가득 체험했다. 4월 중순이었지만 수은주가 42도를 가리켰다. 햇볕 속에 호텔 밖으로 몇 걸음만 옮겨도 머리가 띵했다.

하지만 2월 중순에 찾은 쿠웨이트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아침 최저기온이 15도 안팎에, 낮 최고기온도 20도를 조금 웃돌았다. 햇볕은 좀 강했지만 그늘에 들어서면 상쾌한 봄바람에 기분이 좋아졌다. 일행 중 한 명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봄날씨가 생각난다고 했다. 물론 한여름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뜨겁다. 3월 중순만 돼도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어서기 때문에 야외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기간은 4~5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4월 평균 최고기온이 34도, 8월 최고기온은 평균 47도나 된다.

쿠웨이트는 면적이 1만7800㎢로 경상북도와 비슷한 소국이다. 인구는 약 280만명이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가 매장량 기준 세계 7위에 해당하는 1015억 배럴의 원유 위에 떠있다. 1752년 오스만 제국 이라크 주의 한 자치령으로 역사에 등장한 쿠웨이트가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과 간섭에 시달려온 이유다.

1899~1961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1990년에는 사담 후세인이 이끌던 이라크에 점령됐다가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국의 도움으로 이듬해 ‘해방’을 맞았다.



쿠웨이트의 관광명소 쿠웨이트타워의 야경. <사진 : 블룸버그>

부르즈 칼리파보다 높은 ‘무바라크 타워’

쇼핑몰에서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페르시아만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현대건설이 맡아 진행 중인 해상 연륙교 ‘셰이크 자베르 코즈웨이(이하 코즈웨이 대교)’의 건설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까마득히 먼 거리지만 돛단배 모양을 닮은 주탑 부분의 웅장한 자태는 육안으로도 식별이 가능했다. 가까이 갈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디지털 카메라 줌을 최대로 당겨 코즈웨이 대교를 향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같은 방향 앞쪽 벤치에 앉은 노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리를 뜬다.

코즈웨이 대교는 육지 부분을 포함해 총길이가 36㎞에 이르는 대형 구조물로 2012년 11월에 공사를 시작해 올해 11월 완공 예정이다. 총공사비는 약 2조7150억원이다.

완공되면 쿠웨이트시티 북쪽 해안가에 있는 슈웨이크 자유무역지대에서 직선거리로 30㎞가량 떨어진 바다 건너 수비야 지역을 자동차로 오갈 수 있게 된다. 현재는 쿠웨이트시티 도심에서 수비야까지 육로로 80㎞ 정도 떨어져 있어 차로 한시간 이상 걸리지만, 다리가 완공되면 소요 시간이 3분의 1가량 단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즈웨이 대교 건설은 ‘제2의 두바이’를 목표로 하는 쿠웨이트 정부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줄 핵심 프로젝트다. 다리의 한쪽 끝인 수비야에는 두바이의 해변 상업 지역인 비즈니스베이와 워터프론트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세계 최대의 해안 신도시 실크시티(The City of Silk) 건설을 추진 중이다. 국제공항 등을 새롭게 건설해 자유무역지대로 지정하고,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를 능가하는 높이 1001m의 ‘무바라크 타워’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총 70억달러를 투입해 5개 GCC(걸프협력회의) 국가들을 연결하는 철도 건설도 추진 중이다.

쿠웨이트의 변신 노력은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비즈니스 친화적인 첨단 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중동 국가의 고민과 노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쿠웨이트의 재정 수입 중 석유 관련 산업은 90%를 차지한다.

그런데 탈석유 혁신의 ‘지존’인 두바이가 건재한 데다 지역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도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앞세워 두바이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상황에서 쿠웨이트 정부가 이토록 야심 찬 프로젝트의 성공을 확신하는 이유는 뭘까. 그 실마리를 비슷한 시기에 쿠웨이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찾을 수 있었다.



현대건설이 진행 중인 해상연륙교 ‘셰이크 자베르 코즈웨이’ 건설현장. <사진 : 이용성 차장>

사우디-이란 사이에서 성공적인 ‘균형외교’

지난 2월 14일(현지시각) 쿠웨이트 바얀(Bayan) 왕궁에 전 세계 70여 개국 장·차관급 대표들과 30여 개의 국제기구 대표들이 속속 도착했다. 삼엄한 경비 속에 사방이 금빛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왕궁 회의장을 찾은 이들 중에는 셰이크 사바 알 아흐마드 알 사바 쿠웨이트 국왕 외에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와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2월 12~14일 쿠웨이트에서 열린 ‘이라크 재건을 위한 쿠웨이트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쿠웨이트를 찾았다. 최근 경질된 렉스 틸러슨 전 미국 국무장관도 전날 열린 기업인 대상 행사에 참석했다.

이라크 정부는 지난해 12월 10일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종료를 선언하면서 파괴된 인프라에 대한 대대적인 재건 사업을 올해 안으로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라크 정부는 재건 비용으로 향후 10년간 883억달러(약 94조570억원)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라크와 국제 동맹군이 IS와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제2 도시 모술을 포함한 주요 도시들이 사실상 폐허로 변했기 때문이다. 피란민도 수백만 명에 이른다.

알 사바 쿠웨이트 국왕은 이날 회의에서 IS 공격에 맞서 승리를 이끈 이라크 정부의 노력을 치하하면서 “이라크 재건은 이라크 혼자 힘으로 이룰 수 없다”며 국제 사회의 지원을 호소했다. 김용 총재는 “(세계은행은) 이라크에서 급한 불을 끄면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에도 신경을 쓸 것”이라며 “이라크 재건을 위해 민간 부문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전날 기업 행사에 참석한 틸러슨 전 장관도 “이라크와 시리아 재건이 순조롭지 못할 경우 IS가 득세하던 시절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며 이라크 재건에 대한 각국 정부와 기업의 관심을 호소했다.

이라크 경제의 재건은 이슬람의 급진화와 그로 인한 테러 공격의 확산을 막기 위한 노력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라크 재건을 위한 국제 행사를 쿠웨이트에서 개최한 것은 쿠웨이트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관련이 있다.

쿠웨이트는 이라크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사우디와 이란·이라크 등 중동의 강대국들이 만나는 접점이다. 이라크 남부 바스라 지역에 좁은 바닷길이 있지만 수심이 얕아 대형 화물선이 지날 수 없기 때문에 이라크로 향하는 주요 화물은 쿠웨이트를 거쳐야 한다.


지난달 쿠웨이트에서 열린 이라크 재건을 위한 국제회의에 나란히 참석한 하이데르 알아바디(맨 왼쪽) 이라크 총리와 셰이크 사바 알 아흐마드 알 사바(맨 오른쪽) 쿠웨이트 국왕. <사진 : 트위터 캡쳐>

종파 구성도 또 다른 이유다. 쿠웨이트 국민의 70%는 수니파다. 하지만 왕실 자금은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시아파가 관리한다. 미국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두바이와 쿠웨이트를 공식적인 무역 채널로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쿠웨이트는 사우디와 인연도 깊다. 1991년 이라크가 침공했을 때, 쿠웨이트 왕족들은 사우디로 피신했다. 정치·외교·종교적으로는 사우디와 가깝지만 경제적으로는 이란과 협력하며 균형을 맞추고 있다. 중동 전역이 수니-시아 갈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특수성은 큰 경쟁력일 수밖에 없다.

GCC 국가 중 유일하게 의회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정치적으로 안정됐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오랜 우방이란 점도 쿠웨이트의 역할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3일간의 재건 회의 동안 총 300억달러의 기금이 조성됐다. 터키가 50억달러의 차관과 투자 지원을 결정했고, 영국은 10년간 매년 10억달러의 수출금융 제공을 약속했다. 사우디와 UAE·쿠웨이트·카타르 등 GCC 회원국들은 차관과 투자 등 총 70억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공적개발원조(ODA) 1145만달러, 인도적 지원 1000만달러(안정화기금 500만달러 포함) 등 총 2145만달러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라크 정부는 재건 참여 기업에 50년간 사용 후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부동산 대여권과 10~15년 면세 혜택, 정부 인프라 지원 약속으로 화답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에도 좋은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임성남 외교부 차관은 기자에게 “한국 기업들은 이미 현지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어 현지 대형 프로젝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라크에는 한국가스공사와 현대건설·GS건설·한화·대우건설·삼성중공업·STX 등 다수의 한국 기업이 유가스전, 신도시건설, 정유공장, 방파제 공사 등을 진행 중이다.

회의에 참석한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는 “뭐든 첫걸음이 중요하다”며 이라크 재건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준 쿠웨이트 정부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1990년 이라크의 침공을 받은 이후 앙숙관계였던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협력이 향후 중동의 경제 지형도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주목된다.


plus point

LG전자 쿠웨이트 브랜드숍 오픈


지난 11일 문을 연 LG전자 쿠웨이트 브랜드숍. <사진 : LG전자>

LG전자는 지난 11일(현지시각) 쿠웨이트 핵심 상권 중 하나인 ‘로자나 몰’에서 브랜드숍 오픈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유연철 주쿠웨이트 대사, 차국환 LG전자 중동아프리카지역 대표(부사장), 최용근 걸프법인장(상무) 등이 참석했다. 이번에 오픈한 프리미엄 브랜드숍은 2개 층으로 매장 내에 초프리미엄 가전 LG 시그니처를 소개하기 위한 체험존을 마련해 고객들이 올레드(OLED)TV와 세탁기, 냉장고 등 LG 시그니처 제품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1층과 2층을 합쳐 433㎡ 규모다.

LG전자 관계자는 “중동 지역 총 12개의 LG 프리미엄 브랜드숍은 모두 LG 시그니처 제품을 갖추고 있으며 LG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전자는 지난해 이집트 최대 쇼핑센터 ‘몰 오브 이집트’에 270㎡ 규모의 프리미엄 브랜드숍을 열어 주목을 받았다.

LG전자는 쿠웨이트 외에도 이집트·이란·레바논·요르단·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주요 국가에서 총 12개의 프리미엄 브랜드숍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가별 핵심 상권을 중심으로 프리미엄 브랜드숍을 지속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차국환 부사장은 “성장 잠재력이 큰 중동 지역에서 프리미엄 브랜드숍을 확대해 프리미엄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interview 유연철 주쿠웨이트 대사
“쿠웨이트는 자본·자원 겸비한 중동의 테스트베드”

이용성 차장

“쿠웨이트는 중동의 ‘테스트베드’다. 쿠웨이트에서 인정받으면 중동 어디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

쿠웨이트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만난 유연철 대사는 쿠웨이트 시장의 중요성을 묻는 질문에 주변국이 포함된 쿠웨이트 지도부터 보여줬다.

사우디와 이라크·이란과 국경을 접한 전략적 요충지로 시장 잠재력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쿠웨이트가 제2의 두바이가 될 수 있을까.
“사실 쿠웨이트는 두바이 이전의 두바이였다. 그래서 국민들의 자부심이 강하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언젠가 쿠웨이트가 두바이를 능가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근거가 뭔가.
“지정학적인 매력에서 쿠웨이트를 능가할 나라는 중동에 없다. 이란·이라크·사우디와 모두 연결된다. 쿠웨이트 개발은 결국 이란과 이라크 개발로 연결될 것이다. 카타르와 이란은 세계 최대 천연가스 지역인 ‘사우스파르스 유전’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카타르와 두바이가 외교관계 단절로 앙숙이 됐기 때문에 이란 입장에서 쿠웨이트가 더 안전한 투자처로 느껴질 것이다.”

두바이와 비교하면 어떤가.
“두바이는 자기자본이 없다. 1990년대에 쿠웨이트 자본이 대거 미국으로 몰렸는데 9·11 테러가 터지면서 우연한 기회에 외환 자유법을 시행한 두바이로 자금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두바이를 만든 자금의 상당 부분은 쿠웨이트 자본이다. 쿠웨이트는 자원과 자본을 두루 갖춘 나라인 만큼 성장 잠재력이 엄청나다.”

이라크 재건 국제회의를 쿠웨이트에서 개최한 이유는.
“과거 경험을 통해 이라크의 안정이 곧 쿠웨이트의 안정이라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라크가 경제적으로 번영해야 쿠웨이트도 번영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더해 이라크에 부담을 주려는 의도도 있다. 쿠웨이트에 신세를 지도록 만들어서 ‘이상한 생각’을 못 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다.”

쿠웨이트에서 우리 기업의 위상은.
“과거 쿠웨이트 시장에서는 ‘세계 최고’가 아니면 통하지 않았다. 한국산은 명함을 내밀기 어려웠는데 그런 인식이 2015년 이후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의 의료 수준은 인정받고 있다. 중국 기업들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지만 쿠웨이트가 미국의 우방인 만큼 안보 관련 문제가 있어 쉽지 않을 것이다.”

원전 분야의 전망은 어떤가.
“쿠웨이트는 ‘클린 에너지’ 개발에 관심이 많지만 원전은 과도기적 에너지원으로 생각한다. 석유 다음에 궁극적인 대체 에너지가 나오기까지 사용하는 중간 단계라는 것이다. 한국 기업도 이 점을 파악하고 쿠웨이트와 차세대 클린 에너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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