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당 밀크티가 인기를 얻자 흑당 관련 신제품이 잇달아 출시됐다.
흑당 밀크티가 인기를 얻자 흑당 관련 신제품이 잇달아 출시됐다.

“호떡인지 만두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이 재밌어서 샀어요. 속에 크림치즈가 들어있다니 어쨌든 맛은 있지 않을까요?”

11월 25일 서울 동대문구 롯데마트 청량리점의 냉동식품 판매대 앞에서 한참 고민하던 장선우(27)씨는 CJ제일제당 ‘크림치즈호떡만두’를 집어 들었다. 시식코너 판매원은 “요즘 많이 나가는 제품이다. 크림치즈뿐만 아니라 불고기와 피자 맛도 있는데 모두 독특하게 맛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혹한 기자도 제품을 구매해 집에서 구워봤다. 군만두 특유의 바삭한 만두피 속에 쫄깃한 호떡반죽과 달콤한 크림치즈가 어우러진 맛.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이미 유명한 ‘괴식’ 반열에 들 정도로 생소한 조합이지만, 의외로 훌륭했다.

이날 롯데마트 식품 판매대 곳곳에서는 괴식 상품이 흔하게 발견됐다. 과자 판매대에서는 ‘도리토스 마라맛(롯데제과)’ ‘흑당 짱구(삼양)’ 등 올해 유행한 마라탕과 흑당 밀크티를 자사의 스테디셀러 스낵에 응용한 제품이 눈에 띄었다. 라면 코너에도 국물은 완벽하지만 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는 ‘쇠고기미역국 라면(오뚜기)’부터 ‘팥칼국수(오뚜기)’ ‘매콤달콤양념치킨(농심)’ 등 이색적인 제품이 다수 포진했다.

유통업계가 ‘괴식 트렌드’에 주목하며 파격적인 신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선영 롯데중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신제품이 주목받기 위해서는 맛과 가격에 더해 독특한 비주얼이나 이국적인 맛 등의 개성까지 갖춰야 한다”며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색 식품’이 유행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얼굴만 한 치킨 디저트’라는 콘셉트로 2019년 6월 출시된 롯데리아 지파이. ‘검은색은 식욕을 억제한다’는 불문율을 깬 ‘올블랙치킨버거’. 사진 롯데리아, CU
왼쪽부터 ‘얼굴만 한 치킨 디저트’라는 콘셉트로 2019년 6월 출시된 롯데리아 지파이. ‘검은색은 식욕을 억제한다’는 불문율을 깬 ‘올블랙치킨버거’. 사진 롯데리아, CU

시각적 충격으로 어필하는 ‘이색 상품’

롯데리아가 지난 6월 출시한 ‘지파이’의 성공 요인은 ‘괴식’스러운 시각적 충격이다. ‘치킨 너겟은 한입 크기’라는 기존의 상식을 깨는 얼굴만 한 크기가 ‘먹기보다 인증샷이 먼저’인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합성어)’에게 정확하게 먹혀들었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지파이와 얼굴 크기를 비교하는 인증샷이 유행하며, 10일 만에 100만 개가 판매됐다. 안 연구원은 “대만에서는 일반적인 먹거리인 널따란 치킨파이가 한국 소비자에게는 독특한 비주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실제로 출시 전부터 ‘얼굴만 한 치킨 디저트’로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고 했다. 롯데리아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파이와 얼굴 크기를 비교하는 인증샷을 올리면 증정 혜택을 주는 SNS 이벤트도 진행했다.

시각적 충격을 강조하는 신제품 출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은 편의점업계다. CU 편의점이 10월 23일 출시한 ‘올블랙치킨버거’는 빵부터 패티까지 모두 검은색으로, 얼핏 보면 실수로 태웠거나 부패한 음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식욕을 억제하는 검은색과 파란색은 되도록 식품과 포장지에 넣지 않는다’는 유통업계의 불문율을 깬 것이다. GS 편의점이 올해 초 내놓은 ‘황금왕돈까스’는 세로 21㎝, 가로 15㎝의 압도적 크기로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한때 도시락 매출왕 자리를 차지했다.


유행하는 이색 식품 키워드에 즉각 반응

새로운 이색 식품이 등장하면 유통업계는 발 빠르게 대응해 비슷한 모티브의 신제품을 출시한다. 대만에서 넘어온 흑당밀크티가 대표적이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출시한 ‘아메리치노 흑당(엔제리너스)’ ‘흑당 버블티(이디야)’ 등 유사 음료를 시작으로 흑당 과자, 흑당 크림빵, 흑당 샌드위치 등 흑당이 들어간 온갖 신제품이 쏟아졌다. 심지어 흑당 닭강정까지 출시되자 네티즌 사이에서는 “이제 흑당 김치, 흑당 밥만 나오면 되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러한 트렌드가 2014년 ‘허니버터칩 광풍’을 시발점으로 본격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해태제과에서 출시한 허니버터칩이 전국적인 품귀 대란을 빚을 정도로 흥행하자, 다른 제조사에서 출시한 유사 상품까지 덩달아 ‘허니버터 특수’를 톡톡히 누렸던 경험 탓이라는 것이다. 이후 2017년 와사비 열풍이 불자 ‘눈을 감자 와사비맛(오리온)’ ‘와사마요 볶음면(삼양)’ ‘와사비톡(페리카나)’이 잇달아 출시됐고, 올해는 영화 ‘극한직업’의 ‘수원왕갈비통닭’에서 모티브를 얻은 ‘왕갈비통닭볶음면(삼양)’ ‘왕갈비맛 통닭스낵(이마트)’ ‘수원왕갈비치킨김밥(CU)’ 등이 유통가를 휩쓸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젊은층 사이에서 이슈가 되려면 유행 코드에 편승한 신제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며 “다만 유행이라는 말 그대로 지속가능성은 떨어지기 때문에, 전체 계층이 타깃인 제품과는 별도의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이스크림에서 젤리로, 치킨에서 과자로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은 2019년 푸드 트렌드 중 하나로 ‘펀슈머’를 꼽았다. ‘재미(fun)’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인 펀슈머는 소비자가 제품 소비 과정에서 재미를 추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유통업계에서는 오랫동안 사랑받은 스터디셀러 식품을 변형해 이색 식품으로 출시하는 전략으로 나타난다. 죠스바에서 파생된 ‘죠스바젤리’나 메로나에서 파생된 ‘메로나스파클링’ 등이 대표적 사례다.

업계는 신제품 출시의 부담을 덜고, 기존 소비자층에 의한 입소문 확산이 쉽다는 점에서 이러한 장르전환을 활발하게 시도하고 있다. 푸드비즈랩에 따르면, 원제품이 빙과류일 때 장르전환 효과가 가장 크다. 온라인 구전을 통해 이슈를 만들어, 단기간에 집중적 판매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제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마케팅 부서·대행사 등과 긴밀하게 협력한다.

다른 회사와 협업을 통해 더욱 파격적인 장르전환을 시도하기도 한다. 7월 오리온과 맘스터치는 협업을 통해 ‘치킨팝 땡초찜닭맛’과 ‘매콤소이팝’을 각각 출시했다. 닭강정 맛 과자인 치킨팝에 진짜 치킨소스를 입힌 것이다. 이렇게 개발한 치킨팝 땡초찜닭맛을 실제 치킨에 토핑한 것이 맘스터치의 매콤소이팝이다.

김효은 오리온 마케팅팀 과장은 “치킨팝과 맘스터치 모두 10대 학생에게 인기가 높다는 특성이 있어 협업 상품을 개발하게 됐다”며 “치킨팝 브랜드가 재출시 7개월 만에 2000만 봉 팔렸는데, 이러한 성과엔 맘스터치와 협력을 통해 출시한 이색 식품도 상당한 요인이 됐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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