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가 돌아왔다. 고속도로 휴게소, 케이블 채널 저 끝 번호에서 스쳐 지나가듯 들렸던 트로트가 이제는 TV, 라디오를 틀기만 하면 들린다. 대중은 올드하고 촌스러워서 좋아도 좋다고 말하지 못했던 트로트를 대놓고 즐긴다. 스타의 모든 것을 소비하고자 하는 ‘덕질(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는 일)’ 문화는 더는 아이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트로트 스타는 강력한 팬덤(fandom·열성 팬)으로 무장해 문화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세대를 막론하고 트로트는 ‘힙’하고 트렌디한 음악이 됐다. 음원 차트 순위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트로트가 상위권에 진입하고 청취율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수십 년간 소수의 가수가 독식했던 시대가 저물고 트로트 신예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바야흐로 트로트 전성시대다.

트로트는 한국에서 100년이란 유구한 세월을 지내온 음악이다. 1920년대 등장한 이래 엔카와 닮았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저급한 장르로 여겨졌던 시기도 있었으나 그 생명력은 강했다. 기원에 대한 여러 논란이 존재하지만, 반복적인 노랫말과 구성진 가락, 한국인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희로애락을 담은 한국 고유의 가요 장르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트로트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담아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암흑기를 맞았다. 트로트를 가요계 변방으로 밀어낸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필두로 한 힙합, 리듬앤드블루스(R&B), 발라드, 댄스 음악이다. 이 장르들이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트로트는 설 자리를 잃어갔다. 반짝이 장식에 원색의 자극적인 의상으로 개그의 소재로 활용되며 희화화됐고, 오랜 세월 대중의 외면 속에 방송가에서도 B급 문화로 취급받으며 그 퀄리티가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1980년대의 심수봉·김수희·주현미·문희옥·현철·설운도·태진아 등 트로트 명맥을 잇는 걸출한 스타들이 끊임없이 활동하기는 했지만, 트로트는 하나의 리듬이나 장르가 아닌 ‘성인 음악’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는 데 만족해야 했다.

2004년 장윤정의 ‘어머나’가 히트를 하면서 트로트는 대중음악 장르로 어깨를 펴기 시작했다. 이어 2005년 박상철의 ‘무조건’, 2006년 박현빈의 ‘곤드레 만드레’, 2009년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 등이 잇따라 나오면서 트로트의 저변이 넓어졌다. 다만 트로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바뀌기는 했으나 몇몇 개별 가수의 성공에 그친 것이 한계였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경연 장면. 사진 TV조선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경연 장면. 사진 TV조선

전기 마련한 오디션 프로그램

트로트를 비주류에서 주류로 끌어올리는 전기를 마련한 것은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과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이다.

미스트롯은 송가인, 홍자 등 중장년층 팬덤을 끌어낸 톱스타를 발굴하고 동시에 트로트를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기는 대중문화로 격상시켰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동안 트로트가 트렌드가 되지 못한 이유는 젊은 세대까지 폭넓게 소비할 수 있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며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은 정통 트로트의 이미지를 깨고 퓨전화된 트로트를 자주 보여줬는데 성악, 민요 등 저변을 폭넓게 가져가 고정된 틀을 깨고 확장했다”고 분석했다.

미스터트롯은 여기에 더해 트로트의 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석현 한국연예예술인협회 이사장은 “미스터트롯을 보면서 트로트가 ‘3분 예술’이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며 “트로트가 쉬운 음악이라는 인식을 바꾸고 고도의 기술과 예술성을 필요로 하는 장르라는 것을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고 했다.

트로트가 주류 장르로 부상하면서 문화계에 일으킨 파급 효과는 막대하다. 그동안 소수의 톱스타가 독주해왔던 구도가 무너지고 신예들이 등장하는, 살아 있는 시장이 됐다. 누구든 실력 있으면 스타가 될 수 있는 판이 열렸다. 민요·성악·판소리·가요·록 등 타 장르 전공자들이 익숙한 듯 새로운 트로트를 들고나오고 있고 배우·개그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 있는 사람들이 트로트 스타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신구(新舊) 구분 없이 무한 경쟁에 돌입했다. 경쟁은 발전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트로트는 더욱 매력적인 장르로 거듭나고 있다.

대중가요는 연령대에 따라 팬층이 확실히 분절돼 있는 시장이다. 트로트는 전 세대를 아울러 사랑받으며 세대 간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한편으로 소비력 있는 4050세대가 문화 산업의 큰손으로 부상하며 산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 이들은 트로트 가수의 모든 것을 소비하는 데 적극적으로 지갑을 연다. 1020세대의 전유물이었던 ‘덕질’에 중장년층이 뛰어든 것. ‘떴다’ 하면 매진되는 트로트 콘서트 덕분에 침체됐던 공연 업계는 활기를 되찾고 있고 음원 서비스 업체들도 새로운 수익원으로 활로를 열었다.

‘이코노미조선’은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트로트 열풍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먼저 오늘날 트로트의 부활을 끌어낸 미스터트롯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고, 트로트 스타(홍진영·김나희·박서진)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또 트로트가 단순한 문화 트렌드에 그치지 않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 K팝에 이어 ‘K트로트’가, 한류 콘텐츠로 부상할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지금의 트로트 열풍이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 트렌드로 자리 잡기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전문가의 의견도 들어봤다.

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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