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진 슬로우다운 / 2 사진 슬로우다운 / 3 사진 더블·디(김동현) / 4 사진 전준범 기자 / 5 사진 전준범 기자
1 사진 슬로우다운
2 사진 슬로우다운
3 사진 더블·디(김동현)
4 사진 전준범 기자
5 사진 전준범 기자

#장면 1

7월 11일 오후 1시 간조(干潮)가 지나자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에 있는 인구 해변 라인업(파도가 부서지는 위치)에 서퍼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날 동해 일대는 초속 8m 이상의 흔들바람과 1.5m 안팎의 높은 파도가 예보된 상황. 하지만 인구항 방파제가 높은 파도를 누그러뜨리고 죽도암이 바람을 막아주는 지형적 특성 덕분에 깔끔한 파도를 즐길 수 있는 인구 해변으로 서퍼들이 몰려든 것이다. 서핑은 보드에 엎드려 누운 상태에서 파도가 부서질 때를 맞춰 패들(팔 젓기)을 한 뒤 속도가 붙은 보드 위에 올라서서 파도의 면을 타는 해상 레저 활동이다.

해가 저물어 갈수록 라인업은 붐볐고 어림잡아 30여 명의 서퍼가 보드에 앉아 파도를 기다렸다. 라인업에서 만난 4년 차 서퍼 김정재(37)씨는 서울에 직장과 집을 두고 매주 주말이면 양양군으로 와 서핑을 즐기는 ‘주말 서퍼’다. 김씨는 “오랜만에 큰 파도가 들어와서 몹시 흥분된다”라며 “해 질 녘까지 파도를 탈 생각이다”라고 했다.

해변 바로 앞 얕은 바다는 서핑을 처음 배우는 강습생들로 만원이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인구 해변뿐만 아니라 양양군 소재 서핑숍에서는 발열 검사와 방명록 작성을 하고, 단체 강습을 지양하는 추세다. 인구 해변의 식당 겸 서핑숍 ‘슬로우다운’을 운영하는 김병재(42)씨는 “가게에 손소독제와 배포용 마스크를 비치하고, 강습 중에도 최대한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있다”라며 “단체 강습은 강습의 질이 떨어지는 데다 코로나19 확산 위험도 있어 4인 이하의 소수 강습 원칙을 지킨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서퍼 중 한 명이라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 서핑숍 영업은 물론 서핑 산업을 활성화하려는 강원도 지역 경제에도 큰 타격이 되므로 매우 조심하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구 해변을 끼고 난 도로를 따라 서핑숍, 음식점, 카페가 빼곡했다. 인구 해변에서 바로 옆 죽도 해변으로 가는 길목에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호텔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동해안의 작은 어촌 도시에 불과했던 양양군은 제주, 부산과 함께 ‘국내 3대 서핑 명소’로 부상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와 부동산 개발 호재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양양군을 찾은 서핑 인구는 50만 명으로 양양군 인구(2만7787명)의 18배였다.


#장면 2

같은 날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에 있는 남춘천 컨트리클럽(CC). 기상청의 비 예보대로 하늘에는 회색 먹구름이 가득했지만, 골프장은 라운딩의 쾌감을 즐기기 위해 나온 주말 골퍼들로 활기를 띠었다. 드넓은 필드 를 팀(캐디 포함 5명)별로 움직이는 이 운동의 특성상 모든 티업 시간의 예약이 다 찼는데도 붐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골프 인기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왜 더 높아졌는지 알 것 같았다. 골프장에 다녀온 뒤 확진 판정을 받은 사례가 전해져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였으나, 모처럼 도시의 격리를 떠나 녹음(綠陰) 속에 파묻힌 주말 골퍼들은 한껏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주말은 거의 풀 부킹(full booking)이라고 보면 된다. 평일도 예전과 비교하면 예약률이 높아진 걸 체감할 수 있다.” 이날 동행한 남성 캐디 이모씨가 말했다. 이씨는 “최근 들어 ‘간만에 살 것 같다’고 말하는 골퍼를 종종 만난다”라며 “골프장이 코로나19 피난처 중 한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말이 사실인 듯하다”고 했다.

휴식 풍경을 살피기 위해 전반전(9홀)이 끝난 후 그늘집(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제공하는 편의시설)을 찾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골퍼 10여 명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몇몇 팀은 그늘집에 들어오지 않고 바깥의 카트에 그대로 앉아 집에서 싸 온 과일을 먹었다. “그늘집 메뉴가 너무 비싸니까 집에서 간식을 챙겨오는 골퍼가 더러 있다. 요즘은 골프장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려고 일부러 (그늘집에) 안 들어오는 분도 많다.” 이씨가 설명했다.

이씨가 현장에서 느낀 골프 열기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골프장의 ‘몸값’ 상승이 대표적인 사례다. 두산그룹이 자구안 발표 이후 첫 번째로 매각에 성공한 강원도 홍천의 대중제 골프장 ‘클럽모우’는 하나금융-모아미래도 컨소시엄이 약 1850억원을 냈다. 홀당 68억5000만원을 지불한 셈이다. 애초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이 골프장의 매각가를 1700억원 정도로 예상했다. 그러나 성사된 금액은 예상치를 150억원 웃돌았다. 앞서 5월 캡스톤자산운용에 팔린 강원도 춘천의 대중제 골프장 ‘더플레이어스’는 1700억원(홀당 63억원)이었다. 골프장 홀당 매각 가격은 2년 전까지만 해도 50억원 선을 이뤘으나 최근 들어 급격히 치솟았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발간한 ‘레저백서 2020’에 따르면 국내 골프 인구는 2015년 399만 명에서 지난해 469만 명으로 4년 새 70만 명 정도 늘었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골프장 내장객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가량 증가했다. 회원제와 대중제를 모두 합한 국내 골프장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15년 11.3%에서 2019년 22.5%로 크게 개선됐다.


1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 2 사진 김은선 / 3 사진 연합뉴스 / 4 사진 조선일보 DB
1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2 사진 김은선
3 사진 연합뉴스
4 사진 조선일보 DB

#장면 3

6월 30일 오후 7시. 서울 역삼동에 있는 실내 암벽장 ‘클라이밍 파크’. 삼면을 빙 두른 암벽에 2~3m 간격을 두고 네 명의 젊은이가 닌자처럼 달라붙어 ‘스포츠 클라이밍(이하 클라이밍)’을 즐기고 있었다. 클라이밍은 산악 지대의 암벽 대신 인공 시설물을 등반하는 종목이다. 네 명의 닌자를 50여 명의 대기자가 초조한 눈빛으로 지켜봤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레포츠 열풍은 클라이밍에도 영향을 미쳤다. 감염 예방 규칙에 따라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답답함에 헉헉대면서도 암벽에 오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직장인 우승우(31)씨는 “실내이긴 해도 혼자 하는 운동이고 층고가 높으므로 방역 의무를 준수하면서 즐기고 있다”고 했다. 김종오 클라이밍 파크 대표는 “올해 5~6월 방문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늘어났다”라고 했다.

암벽장이 주로 붐비는 시간대는 오후 7~10시. 퇴근 이후 근처 실내 암벽장을 찾는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가장 붐비는 요일은 화요일과 목요일. 이들은 월·수·금요일에 충전 시간을 갖고, 주말엔 야외 스포츠에 나선다고 한다. 직장인 김지영(31)씨는 “지난해 1월부터 퇴근길에 암벽장에 들렀다”면서 “주 3회 정도 클라이밍을 즐기는데, 처음에는 출근하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쑤셨지만 갈수록 몸이 적응하더라”라고 했다.

클라이밍의 인기 덕에 실내 암벽장도 활발히 생겨나고 있다. 구글지도 기준 서울 소재 실내 암벽장은 60여 곳에 달한다. 서울에서 지점이 가장 많은 브랜드인 ‘더클라임 클라이밍짐’은 일산점, 홍대점, 마곡점에 이어 올해 서울대입구역점과 강남점을 연다. 박재연 더클라임 클라이밍짐 일산지점 매니저는 “실내 암벽장 투어를 하는 고객층을 공략해 지점을 늘린다”고 했다.

덩달아 클라이밍의 필수품인 암벽화(신발)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유통업체 넬슨스포츠에 따르면, 암벽화 브랜드 ‘스카르파’의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은 2018년 22%, 2019년 30%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뜨거웠던 레포츠

코로나19를 상반기 중 물리칠 수 있으리라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두려움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낯선 상황에서 2020년 하반기의 첫 달도 끝나간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관한 희소식이 들려오지만, 각국이 언택트(untact·비대면)사회 구축을 끝내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 또 다른 바이러스의 침략이 이어질 것이란 사실을 전 세계가 깨달았고, 이미 많은 사람이 비대면 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이 아무리 비대면 일상에 녹아들어 가더라도 영원히 집에 머물 순 없는 노릇이다.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려는 욕구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레포츠 산업의 여러 분야가 활기를 띠는 이유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신체 활동 욕구를 동시에 해결하고 싶은 이에게 등산·골프·서핑 등의 레포츠는 매력적인 대안일 수밖에 없다. ‘이코노미조선’이 이번 커버 스토리 주제로 레포츠 시장을 주목하게 된 배경이다.

‘이코노미조선’ 기자들이 최근 주목받는 인기 레포츠 현장을 경험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안전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고 암벽에 오른다고 했다. 다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죽어가던 레포츠 산업이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만나 부활한 건 아니라는 점이다. 레포츠 시장은 지난 수년간 성장해오고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맞아 여가 활동을 즐기려는 인구가 늘었고,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까지 겹치면서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이 과거보다 많아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규칙적인 운동(한 번에 최소 30분간)을 일주일에 1회 이상 하는 국민 비율은 2012년 43.3%에서 2019년 66.6%로 늘었다. 이 비율은 매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라는 초대형 이슈가 이미 달궈진 레포츠 산업에 기름을 부은 것으로 봐야 한다. 해외 골프 여행길이 막힌 이들이 국내 골프장으로 몰려갔고, 동남아나 하와이로 서핑 투어를 떠나던 서퍼들이 제주·양양·부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코로나19가 끝나건 안 끝나건 레포츠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더 뜨거워질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기업은 어떤 기회와 위기를 맞닥뜨릴까. 정부는 레포츠 시장과 그 시장 이용자를 위해 어떤 정책을 마련해야 할까. 이번 커버 스토리에서 ‘이코노미조선’은 어수선한 시기를 레포츠로 극복하려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함께 현장을 느꼈다. 레포츠 인기에 부응하려는 골프용품 업체와 캠핑카 회사를 방문해 기업인의 노력도 살폈다. 전문가로부터는 레포츠 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경청했다. 모든 독자 여러분이 ‘이코노미조선’과 함께 알찬 여름 휴가 시즌을 보냈으면 한다.

춘천=전준범 기자, 양양=임수정 기자,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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