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오후 서울 난향동 신림종합사회복지관 옥상에서 최성숙 관장이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4월 30일 오후 서울 난향동 신림종합사회복지관 옥상에서 최성숙 관장이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지난해 2월 국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전국 사회복지 시설에는 비상이 걸렸다. 전국적인 휴관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복지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은 삶의 연속성이 중단될 위기를 초래했다.

그러나 서울시 관악구 난향동에 있는 신림종합사회복지관은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3월 직원 중 코로나19 확진자까지 발생해 전 직원이 자가 격리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신림종합사회복지관은 지난해 2월 자체적으로 만든 대응 매뉴얼에 따라 위기를 극복했다. 전 직원이 구글드라이브와 나스서버 시스템을 활용해 의사 결정 권한을 위임했고,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진행했다.

‘우리는 안녕합니다’, 신림종합사회복지관이 소외된 이웃들을 어떻게 돌보나 하는 데서 착안해 개설한 소셜미디어(SNS)다. 이를 통해 계속 서로의 소식을 알리고 소통을 이어 갔다. 이용자, 지역 주민들에게 문자메시지(SMS), 카카오톡 메시지, 홈페이지를 통해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했다. 온라인 활용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는 안내문을 발송했다. 서울시와 하루에 2회씩 동향 보고 체계를 갖추고, 인근 사회복지관에 위기 상황을 전달해 협조 요청을 구했다.

이 과정에서 40년간의 복지관 운영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지역 네트워크도 빛을 발했다. 관악구청과 난향·난곡·미성동 주민센터에서는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전달하고 안부를 확인해줬다. 인근 성민종합사회복지관은 식사 포장과 배달을 책임졌다. 경로 식당에는 포장 음식을 제공하고, 도시락과 밑반찬은 포장 후 배달했다. 관악구청과도 비상 연락 체계를 구축해 보건소 신고 및 관련 부서 협조 체계를 유지했다. 추가 인력이 필요한 상황에는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대체 인력 지원 사업을 통해 인력을 확보했다. 핵심은 인근 사회복지관 등 마을공동체와 협력해 기본돌봄 서비스를 중단 없이 제공한 것이다. 자가 격리 후에는 복지사가 지역 주민을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도 강화했다.

코로나19 이후의 주민 삶의 변화에 대한 신림종합사회복지관의 대응도 주목받았다. 이 복지관은 지난해 7월부터 5개월간 현장 조사 연구를 진행했다. 코로나19 관련 학계의 연구들은 있었지만, 현장에서 연구 작업을 진행한 사례는 없었기에 큰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실시간 유튜브로 진행된 연구보고서 공유회 조회 수는 올해 7월 12일 현재 2000회가 넘었다.

신림종합사회복지관은 한국전쟁 이후 외국 원조 기관과 정부 지원으로 설립된 다른 복지 시설과 달리 고(故) 윤덕선 학교법인일송학원 명예이사장(1921~96)이 1981년에 만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자본 복지관이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하영태 서울시 지역돌봄복지과장은 ‘이코노미조선’과 통화에서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신림종합사회복지관의 위기관리 매뉴얼이 큰 도움이 됐다”라며 “이 사례를 서울시 98개 다른 종합사회복지관에 모범 사례로 전파했다”라고 했다.

포근한 인상의 최성숙 신림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은 4월 30일 집무실에서 이뤄진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40년 역사의 신림종합사회복지관도 처음 경험하는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에 당황했지만, 선제 대응으로 위기를 이겨냈다”라며 “최근에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 가능한 실천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며 복지관 이용 제한과 사회적 거리 두기로 더 힘들고 외로운 취약 계층을 살피고 챙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했다.

실제 이날 ‘이코노미조선’이 찾아간 복지관에서는 할머니, 청년, 아이들이 방역 준칙을 지키며 복지사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최 관장의 방엔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의술보다 인술을’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그는 “1981년 신림복지관(신림종합사회복지관 전신) 개관 때 모토”라고 소개했다.

신림종합사회복지관은 애초 난곡 지역 달동네에 있었는데 1999년 관악구청이 건립한 사회복지관(난향동 소재)을 위탁 운영하는 형태로 전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서울의 저소득층 밀집 지역 중 한 곳으로, 의료와 사회복지 시설이 매우 부족했다. 최 관장은 30년간 신림복지관을 지킨 산증인이다. 그는 달동네가 재개발되는 모습을 지켜봤으며 다양한 사회복지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다.

최 관장은 “신림종합사회복지관이 코로나19 대응에 우수한 평가를 받는 것은 그동안의 조직 역량이 축적돼 있었기에 가능했다”라며 “이는 선도적인 스마트워크 시스템, 권한 위임, 수평적 조직 문화 등”이라고 했다. 최 관장은 이어 “고 윤덕선 명예이사장의 ‘주춧돌’ 정신에서 현 윤대원 이사장의 ‘응전자’ 정신으로 변신해 미래 100년을 개척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더욱 적극적인 사회복지에 나서겠다는 포부다. 다음은 최 관장과 일문일답.


1. 서울 난향동 신림종합사회복지관에서 한 아이가 복지관 직원과 얘기하고 있다. 2. 신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지역 할머니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간단한 체조를 하고 있다. 3. 신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지역 청년이 복지관 직원과 상담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1. 서울 난향동 신림종합사회복지관에서 한 아이가 복지관 직원과 얘기하고 있다.
2. 신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지역 할머니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간단한 체조를 하고 있다.
3. 신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지역 청년이 복지관 직원과 상담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빈곤 지역을 30년간 지켜보셨다. 과거는 어땠나

“1981년 복지관 개관 시 취약 계층은 건강보험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병원을 아예 갈 수 없었다고 한다. 복지관 내 부설의원을 설치해서 그런 분들을 집중적으로 도왔다. 지원 나온 의료진들과 전쟁 때 야전을 나가듯 링거 수액을 챙겨서 달동네 움막집에 비닐을 깔고 긴급한 환자들에게 응급처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부설의원에서 만성질환자를 도왔다면, 입원이나 수술이 필요한 분들은 한림대의료원에 자선 의뢰를 통해 생명을 살리기도 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전후로는 집이 망해서 도망쳐 오는 사람들이 여기 달동네에 살았다. 전입신고도 하지 않아서 정부 지원에서도 제외됐다. 아이랑 엄마만 있는 집이 많았다. 복지 사각지대가 많았다는 의미다. 결식아동과 노숙자도 IMF 이후 급증했다. 대표적으로 결식아동 돕기 캠페인을 했다. 1998년도에 방송 모금이 시작됐다. KBS ‘사랑의 리퀘스트(폐지)’, EBS ‘효도우미(현 나눔 0700)’ 등이 대표적이다. 민간에서 나선 것이다. 당시 최다 출연해, 실상을 알렸다.”

복지관의 현재 역할은
“2011년쯤 부설의원 역할은 종료됐다. 국민건강보험 혜택이 많아져서다. 관악구에 없던 보건소 분원도 복지관 인근에 생겼다. 절박한 상황은 해소됐지만, 지금도 취약 계층 수술 및 치과 질환의 경우 후원금을 모아서 지원하고 있다. 현재는 젊은이부터 노인까지 취약 계층의 일상이 연결되는 공간 역할을 한다. 특히 늘어나는 1인 가구의 고독사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노인뿐 아니라 중장년층의 고독사 사례도 많아졌다.”

법제화된 복지 모델도 있다고 들었다
“긴급복지지원법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이 가장 보람 있다. 방송을 통해 모금된 돈을 배분 심의하는 데 2달이 넘게 걸렸다. 당장 급한 일이 생긴 취약 계층에게는 도움 되지 않았다. 2000년 현 윤대원 이사장이 2000만원을 사재로 냈다. 당시만 해도 큰돈이었다. 이를 ‘생활위기자금’으로 만들어 24시간 이내 100만원 한도로 긴급 지원했다. 그해 봄에 지역 국회의원이 이를 현장에서 확인한 후 관악구 전체로 확대했다. 그것이 현 ‘SOS기금회’다. 기금을 만들어 홍보도 하고 일일 호프도 해 자금을 모아 계속 지원했다. 이후 정부에서도 이 시스템을 채택했다. 선조사 후지원이 아닌, 선지원 후조사 시스템이다. 이는 지역에서 복지관이 주민과 밀착돼 일해 왔기 때문에 서류와 절차가 없어도 가능한 모델이다. 2005년 정부안으로 법안이 발의돼 긴급복지지원법 제정으로 연결됐다. 20년 전 2000만원의 민간 기금이 지금은 2000억원이 넘는 정부 예산이 돼 위기에 처한 많은 사람이 적시에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모범 대응으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2월 보건복지부에서 사회복지 시설 대응 지침을 배포했는데, 실제 상황 시 대응 요령이 미흡했다. 그래서 우리는 혹시 발생할지 모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응 매뉴얼을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복지관 운영이 중단돼도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역 내 민관 협력 체계를 만들고, 이를 서울시에도 제안해 대응 계획에 반영했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했던 대응 매뉴얼로 실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급식 서비스, 돌봄 서비스,위기가정 자원연계 등 어느 것도 멈추지 않고 진행했다. 예상치 못한 위기상황에서의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은 모범 사례로 전파됐다.”

코로나19 시대 달라진 상황은
“코로나19에 따라 재택 시간이 늘면서 불우한 가정의 불화가 더욱 심해진다. 노인 학대, 아동 학대 상황이 발생해 경찰이 출동해도 일회성에 그친다. 이후의 지원은 복지관 몫이다. 노인분들이 경로당, 복지관에 못 오고 단칸방에서 자녀와 둘이 지내다 알코올이나 정신적인 문제로 긴급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모텔에 임시로 모시고 식사도 챙겨드리면서 안전을 확보해 드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인간다운 존엄 있는 삶은 신체적 건강과 사회적 건강이 어우러져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사회 변화와 도전에 맞춰 새로운 사회복지 시범 사업을 꾸준히 개발하고 추진할 방침이다. 40년간 쌓은 신림종합사회복지관의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지역의 복지력을 키우는 데 더 노력할 계획이다.”


plus point

주목받는 100년 일송(一松) 정신

김문관 기자

고(故) 윤덕선 학교법인일송학원 명예이사장. 사진 학교법인일송학원 재단
고(故) 윤덕선 학교법인일송학원 명예이사장. 사진 학교법인일송학원 재단

신림종합사회복지관은 고(故) 윤덕선(1921 ~96) 학교법인일송학원 명예이사장의 사회공헌 정신이 남기고 간 산물 중 하나다. 일송(一松) 윤 명예이사장은 올해 태어난 지 100년째가 됐다.

한림대 및 한림대의료원 설립자이자 국내 1세대 의사였던 그는 생전 ‘의료는 곧 인술’이라는 정신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류에 공헌하는 토대를 닦았다.

일송은 국내 의료계 토대를 닦고 발전을 이끌었다. 의료 서비스가 전무하던 시기부터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기초를 닦고, 병원을 찾다가 사망하는 일이 많은 영세민 주거 지역을 골라 병원을 세우고, 무료 순회 진료를 다녔다. 의대·대학병원·자선사업기관을 총 17곳 설립했다. 일송은 1960년대 명동성모병원(현 가톨릭중앙의료원), 필동성심병원(현 중앙대병원)을 세우고 1971년 한림대의료원 한강성심병원을 설립한 뒤 의료시설이 부족한 지역을 찾아 동산성심병원, 강남성심병원, 춘천성심병원, 강동성심병원 등을 세워 의료 수준을 향상시켰다. 

전국 각지를 돌며 무료 순회 진료를 하고 복지관 8곳을 설립하는 등 소외된 이웃에게 손을 내밀었다. 국민 보건 향상을 위한 연구 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특히 의료 체계가 없던 1960년대 전국민영양실태조사를 시행, 국민건강보험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종합복지 초석 놓은 신림복지관

일송은 1981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강남성심병원을 설립해 경영자로서 성공을 거둔 후 교육자로서의 꿈도 실현했다. 1981년 2월 학교 설립 계획 승인신청서를 정부에 제출했고, 7월 학교 설립을 승인받았다. 1982년 1월 8일 학교법인일송학원을 설립하고 3월 한림대 개교식을 했다. 60이 넘은 나이였다. 이와 함께 더욱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의료 사업에 한정하지 않고 도시 영세민의 종합 복지 사업을 펼치는 동시에 복지 활동에도 박차를 가했다. 일송은 빈곤 소외계층이 가진 다양한 문제에 더 통합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1981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 난곡(현 난향동)에 ‘신림복지관(현 신림종합사회복지관)’을 세우고 다양하고 전문적인 복지 사업을 펼쳐 나가기 시작했다.

신림복지관은 올해 개관 40주년을 맞았다. 외국 원조 기관과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설립된 현존하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자본 복지관이다. 보건 의료와 복지 사업을 통합 실시한 국내 최초의 민간 기관으로 평가된다. 무료진료와 도시 영세민을 위한 가정간호 등 종합사회복지 모델이 되는 사업을 펼쳐나가면서 도시 영세민 종합사회복지 사업의 이정표를 마련했다.

신림복지관은 빈곤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의료 복지 사업은 법인 사회복지 사업의 초심이자 중심이었다.

신림복지관을 필두로 1980년대 후반부터는 1988년에 설립된 강원도장애인복지관(1992년~)을 시작으로, 신림어린이집(1989~ 2001년, 관악구청 위탁), 성심복지관(1992~ 99년, 자체 운영), 성심노인의 집(1996~2012년, 관악구청 위탁) 등을 차례로 설립했다. 복지관 활동은 지역과 주 계층이 다를 뿐 활동 내용은 대부분 신림복지관과 유사했다. 이후 강원도장애인종합복지관, 신림종합사회복지관, 안양복지관 및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 등이 잇따라 개소하면서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해 온 법인 사회복지 사업은 한림청소년센터와 화상재단, 나래울종합사회복지관, 동탄노인복지관 등을 설립하면서 내실화, 전문화의 단계에 이르렀다. 

최성숙 신림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은 일송의 정신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일송은 실적이라든지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하라고 강조했다”라며 “신림종합사회복지관의 경험이 앞으로 100년 새로운 사회복지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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