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성공’을 꿈꾸는 기업이 늘고 있다. 환경·빈곤·폭력·노동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거대한 문제에 기업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해결사를 자처한다. 과거처럼 돈을 쥐여주는 것으로 끝나는 쉬운 사회공헌은 착한 성공을 꿈꾸는 기업과 거리가 멀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정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사회 구성원을 설득하는 어려운 길을 걷는다. 기업이 왜 이런 힘든 길을 택했을까.

‘이코노미조선’은 공유 가치 창출(CSV)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꾀하는 기업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CSV는 사회적 가치를 높임과 동시에 기업의 경제적 가치도 함께 높일 수 있다는 다소 이상적인 개념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CSV 사례로 꼽히는 한국 코카콜라의 저수지 사업 현장을 직접 다녀오고, CSV 기업의 사회공헌 실무자 좌담회를 열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손에 잡히지 않았던 CSV의 실체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


자선 활동 → 사회 문제 해결

과거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대체로 자선적이고 시혜적인 성격이 강했다. 어려운 계층에 돈·제품 등을 기부해 기업 이미지를 좋게 하는 식이다. 사회공헌은 기업의 비도덕성이나 위법·비리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덮으려는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정권 눈치를 보며 경영 활동에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는 사회공헌도 적지 않았다. 이런 사회공헌은 꾸준히 이어지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단발적인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은 이윤 창출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사회공헌 대상을 선정하고 전략적인 사업을 꾸려갔다. 홍보와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초창기 원시적 사회공헌이나 마케팅을 위한 사회공헌은 모두 오늘날도 쉽게 볼 수 있다. 아직도 겨울만 오면 얼굴에 검댕을 묻힌 채 연탄을 나르고 시린 손으로 김치를 담그는 모습을 연출하는 기업이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기업 총수를 불러모아 사회공헌을 독려하는 것도 여전한 관례다.

그러나 한편으로 큰 변화의 기류가 흐르고 있다. 기업이 환경 오염, 빈곤, 장애인 차별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여러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단순히 얼마를 썼느냐를 내세우기보다 얼마나 세상을 바꿨느냐에 방점을 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회공헌의 변화를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CSV(creating shared value·공유 가치 창출)’로 개념을 구분한다. CSR은 말 그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방점이 찍혀 있다. 기업이 벌어들인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하고 돈을 버는 과정에서 환경 오염, 빈부 격차, 각종 차별, 노동 착취 등 사회 문제에 일조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사회공헌에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며 마지못해 자원을 내놓는 입장이 된다.

반면 CSV는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의미한다. 이는 2011년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주창한 개념인데 사회적 가치를 높이면 기업의 경제적 가치도 함께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예컨대 기업이 환경 보호에 앞장서면 환경주의자들의 지지를 얻고 이들을 충성 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 장애인을 위한 제품을 만들면 해당 제품을 필요로 하는 글로벌 비정부기구(NGO)가 큰손 고객이 된다. 빈곤 지역 주민을 고용하거나 농경 기술을 보급하면 이들의 소비력이 올라가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네슬레·유니레버·GE·파타고니아 등 글로벌 기업이 사회 문제 해결에 앞장서며 여러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도 유한킴벌리를 필두로 매일유업·CJ·SK 등 대기업이 CSV를 채택했다.


가치 소비 확산…지속 가능 성장 화두

기업이 CSV에 주목하는 이유는 시장에서 오래 사랑받기 위해서다. CSV 기업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면 자신들도 오랫동안 사랑받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신념에 따라 소비하는 똑똑한 소비자의 마음을 얻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착한 소비’가 빠르게 확산했고, 이런 트렌드는 기업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착한 소비는 소비자가 제품의 품질이나 가격만을 보고 구매하는 게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나 사회 공헌,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의 윤리성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것을 뜻한다. 최근 재활용 털이나 인공 충전재를 활용한 윤리적 다운 인증(RDS·responsible down standard) 패딩 점퍼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소비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제품에 담긴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다는 점에서 이런 소비자를 ‘소셜슈머(socialsumer·social과 consumer의 합성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사회적 가치를 높이려는 기업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부도덕한 기업 제품은 철저히 외면하는 적극성을 보인다.

CSV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라는 의견도 있다. 후지이 다케시 딜로이트 컨설팅 일본 파트너는 “CSV는 글로벌 톱 기업이 ‘제2의 죽음의 계곡’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전략”이라고 했다. 글로벌 주요 기업은 시장을 개척해 빠른 속도로 성장했으나 이후 후발 주자가 시장에 뛰어들어 기술 격차를 좁히고 가격 경쟁을 벌이는 제2의 죽음의 계곡에 직면해 있다. 이때 선발 주자는 CSV를 통해 더 나은 세계관을 제시하고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사회적 가치 창출에 속도를 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회적 가치가 포함된 경제적 가치는 선택이 아니라 기업 생존이 걸린 필수 요건”이라고 강조한다.

사회 책임 투자가 늘면서 기업이 얼마나 착한지가 투자 척도가 되기도 한다. 기업은 사회공헌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시해 투자 유치에 힘쓰고 있다. G&A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기업 중 사회공헌 정보를 공시하는 기업은 2011년 20%에서 2018년 86%로 증가했다.

아직까지 CSV의 정의, 구현 방법 등에 대한 여러 논쟁이 있다. 사회적 가치가 기업의 경제적 가치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CSV가 기업의 사회공헌이 나아가야 할 이상적인 방향이라는 점은 공감대를 사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CSV 성공 사례뿐 아니라 실패 사례를 통해 세 가지 CSV 성공 전략을 짚어봤다. 이어 CSR포럼을 운영하는 김도영 SK브로드밴드 사회공헌담당 부장을 비롯해 국민연금, 하나투어, FNC엔터테인먼트 등 3개 기업의 사회공헌 실무자가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들은 국내에서 더 의미 있는 사회공헌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사회·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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