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이 2013년부터 시작한 ‘실버택배’. 국제연합(UN)은 실버택배가 노인 일자리 문제를 개선한 공로를 인정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니셔티브 2019’ 우수 사례로 선정했다. 사진 CJ대한통운
CJ대한통운이 2013년부터 시작한 ‘실버택배’. 국제연합(UN)은 실버택배가 노인 일자리 문제를 개선한 공로를 인정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니셔티브 2019’ 우수 사례로 선정했다. 사진 CJ대한통운

바야흐로 ‘착한 기업’이 살아남는 시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소비자 대부분은 제품 가격과 질을 상품과 서비스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2019년을 살아가는 소비자는 기업윤리까지 따져본다.

소비자들이 매일유업에 대한 신뢰도를 보여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매일유업은 창업주 김복용 회장의 뜻에 따라 대사질환을 앓는 아이들을 위한 특수 분유를 20년 넘게 만들고 있다. 한국에서 400명 남짓한 아이들이 먹는 분유를 만들기 위해 1년에 두 번, 하루 6만5000캔의 분유를 생산하는 공장을 세운다는 이야기는 소비자의 충성심을 높였다. 한 네티즌이 “감동해서 가격 차이가 있더라도 매일유업 제품을 산다”라는 글을 남기자 공감을 표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기업의 일방적인 선행에 반응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들은 매일유업처럼 전문성을 살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경제·사회적 가치를 높일 때에야 비로소 환호한다. 소비자는 기업이 경영 활동을 통해 이익 창출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연말연시에 사회복지시설 앞에 라면이나 연탄, 가전제품을 쌓아놓고 기업 임직원이 사진을 찍는 풍경이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지는 것은 이런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

국내 주요 기업은 이에 발맞춰 새로운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특히 사업으로 얻은 ‘수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개념이 강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대신 ‘공유 가치 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이 최신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CSV는 사회가 기업에 요구하는 사회공헌 활동이기 때문에 기업 홍보에도 도움 된다. 대중에게 기업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수익 창출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 기업 중에서 기업과 사회가 상생하는 새로운 사회공헌 형태, CSV를 실천하는 곳을 살펴봤다.


국제 사회 주목한 CJ대한통운 ‘실버택배’

CJ대한통운이 2013년부터 시작한 ‘실버택배’ 사업은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국제연합(UN)은 실버택배가 노인 일자리 문제를 개선한 공로를 인정해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니셔티브 2019’ 우수 사례로 선정했다. 실버택배는 지난해에도 SDGs 이니셔티브 우수 사례로 선정되는 등 UN에만 세 번째 소개됐다. 또한 실버택배는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국 경제지 ‘포천’이 2017년 선정한 ‘세상을 바꾸는 혁신 기업 50’에 선정됐다.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실버택배 모델을 한국의 대표적인 노인 일자리 창출 사례로 주목했다.

실버택배는 택배 차량이 아파트 단지나 주거 밀집 지역에 물건을 싣고 가면 인근에 사는 만 60세 이상의 배송원이 전동카트를 이용해 소비자 집 앞까지 배송하는 사업 방식이다. CJ대한통운은 주로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을 택배 기사로 채용해 지역 사회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

지금까지 170개 거점을 중심으로 140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실버택배 배송원은 하루에 3~4시간 근무하면서 40~60개의 상품을 배달한다. 월급은 최저시급을 적용해 평균 50만~60만원 정도다. CJ그룹 관계자는 “실버 세대의 경제적 안정은 물론 건강 증진, 사회 생활 참여 등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이 2009년 내놓은 ‘햇반 저단백밥’ 역시 CSV를 구현하는 사례다. 햇반 저단백밥은 이름 그대로 단백질이 적게 들어간 밥이다. 선천적으로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한 페닐케톤뇨증(PKU)이라는 희귀 질환을 앓는 사람을 위한 제품이다. CJ제일제당은 단백질 함유량이 일반 햇반의 10분의 1 수준인 햇반 저단백밥을 개발하는 데 8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햇반 저단백밥의 연 매출은 5000만원 수준이다. 별도의 생산 라인을 관리해야 하는 등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CJ제일제당은 세상에 꼭 필요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CSV에 힘을 주고 있다.


SK그룹, AI·반도체 실력 키우고 나누고

SK텔레콤은 올해 초 홀로 지내는 노인을 대상으로 ‘인공지능(AI) 돌봄 서비스’를 내놓았다. SK텔레콤의 AI 스피커 ‘누구’가 독거노인의 말벗이 되도록 하는 사회공헌 활동이다. 최근에는 치매 위험을 낮추는 프로그램을 더했다. SK텔레콤이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이준영 교수팀, 차의과대 윤정혜 교수와 힘을 합쳐서 치매 예방 서비스 ‘두뇌 톡톡’을 개발해 누구에 담은 것. 이외에도 지방자치단체에서 특정한 대상을 위해 복지센터 행사나 재난재해 정보를 안내하는 ‘소식 톡톡’ 기능을 넣었다.

현재 SK텔레콤의 AI 돌봄 서비스는 전국 8개 지자체에서 2100여 명의 노인이 이용 중이다. SK텔레콤이 3년 전에 선보인 누구를 업데이트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와 기업 수익을 동시에 추구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사회공헌의 하나로 ‘공유 인프라 포털’을 만들었다. 협력사의 경쟁력을 강화해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는 것이 목표다. 공유 인프라 포털은 ‘반도체 아카데미’ ‘분석·측정 지원센터’ 등으로 나뉘어 있으며 SK하이닉스가 30년 이상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가 담겨 있다. 협력사는 회원 가입 이후 반도체 아카데미 코너가 제공하는 제조 공정, 소자, 설계, 통계 등 120여 개 온라인 교육을 수강할 수 있다.


유한킴벌리·교보생명 등 기업 전체로 퍼져

본업에 추가해 선행을 베푸는 대신 본래의 역량을 강화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한국 기업 전체로 퍼지고 있다.

유한킴벌리는 37주 이전 혹은 2.2㎏이 되지 않은 채 태어나는 미숙아를 위한 초소형 기저귀를 생산한다. 대부분의 미숙아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지낸다. 일반 신생아보다 연약해 먹고 입고 쓰는 것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지만, 미숙아를 위한 제품과 종류는 다양하지 않다. 유한킴벌리는 2017년부터 미숙아 전용 제품 ‘하기스 네이처 메이드 이른둥이 소형’을 출시했다. 사탕수수 소재를 이용해 일반 기저귀보다 부드럽게 만들어 피부 자극을 줄였다. 가격도 자사의 일반 기저귀보다 저렴한 편이다.

두유(豆乳)의 대명사 베지밀은 모유나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치료식에서 출발했다. 베지밀을 만드는 정식품은 환자용 영양식 ‘그린비아’를 생산 중이다. 1991년에 개발된 제품으로 소아 당뇨,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영양을 공급한다. 입으로 식사할 수 없는 환자들이 튜브로 섭취하는 제품이기도 하다.

교보생명은 보험 회사라는 특성을 살려 건강, 돈이 부족해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3년 시작한 ‘교보 다솜이 간병 봉사단’은 저소득층 환자와 취약 계층 여성 가장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이다. 환자에겐 무료 간병 서비스를, 여성 가장에겐 일자리를 제공해 경제적 자립을 돕고 일자리를 창출한다.

교보 다솜이 간병 봉사단은 2007년 10월 ‘다솜이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해 11월 정부는 다솜이재단을 사회적기업 1호로 인증했다. 20명으로 시작한 간병인은 2019년 12월 현재 400명으로 늘었다. 서비스 지역은 서울뿐 아니라 경기·인천·대전·대구·부산 등으로 확대됐다.

정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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