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평 한국방송장비산업진흥협회 회장, 대림대 음향연구소 소장, 건국대 공학박사 / 김재평 대림대 방송음향기술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은 소리 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이진혁 기자
김재평
한국방송장비산업진흥협회 회장, 대림대 음향연구소 소장, 건국대 공학박사 / 김재평 대림대 방송음향기술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은 소리 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이진혁 기자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가상현실(VR)·로봇·드론이 주역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4차 산업혁명의 진짜 주인공은 ‘소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들리는 데 문제만 없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기능 중심의 소리 시장이 생체에 미치는 영향과 인간이 느끼는 감성의 영역으로 확대하며 4차 산업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10월 21일 경기도 안양 비산동 대림대에서 만난 김재평 대림대 방송음향기술과 교수는 “모든 산업은 오감(五感)을 위한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한국에서 낙후됐던 소리 산업이 성장하면 새로운 시장과 고용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과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에서 방송·음향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 때도 방송·음향 자문교수를 맡았다.


4차 산업혁명과 소리가 무슨 연관이 있나.
“4차 산업혁명은 혁신적인 기술을 정보통신(ICT)으로 연결해 효율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다. 효율의 핵심은 무엇인가. 인간 중심으로 사고해 인간의 만족도를 한 단계 높이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감각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 때문에 앞으로는 어떻게 디지털에 아날로그를 담는가가 소리 산업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본다.”

왜 기업들이 소리를 활용해야 하나.
“사람에게 귀가 있는 한 소리 산업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문화 수준이 높아지고 국민총생산(GNP)이 늘어 나라가 부유해질수록 사람들은 좋은 소리를 찾는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선 제품에 차별성을 부여하기 위해 소리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 셔터 소리가 안 난다고 생각해봐라. 사진 찍는 재미가 있을까. 하다못해 냉장고 문을 여닫을 때 나는 소리도 디자인한다. 바이크나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요소에는 소리가 들어가고, 이것은 제품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좋은 소리는 무엇인가.
“인간을 편안하게 하는 소리다. 물 흐르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등 자연에 가까운 소리다. 실제로 이런 소리를 음향학적으로 분석해보면 화이트 노이즈에 가깝다. 사람들이 요즘 유행하는 자율감각쾌락반응(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을 유튜브에서 듣는 이유가 있다. 개인적으로 디지털 음원은 샘플링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아날로그보다 감흥이 덜하다. 아날로그 주파수는 0에서 무한대 헤르츠(㎐)이지만, 아날로그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20~2만㎐ 대역만 남기고 잘린다. 귀로 듣는 소리도 있지만, 몸으로 듣는 소리도 있는데, 그 부분이 사라지는 셈이다.”


한국이 소리 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궁금하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사례를 보면 청각 산업이 가장 늦게 발전했다.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선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소리 산업이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오디오 분야를 제외하면 발전 속도가 여전히 더디다. 나는 공공장소에서의 방송을 소리 산업 발전의 척도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수준 이하다. 공공장소에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이나 재난 안전 방송은 알아듣기조차 어렵다.”

지나치게 음량 중심이라는 건가.
“맞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유례없는 폭우, 화재 등이 전 세계를 강타하며 재난이 빈번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출력 위주로 재난 방송 시스템이 설계돼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는 명료도 중심으로 모든 시스템이 설계돼야 한다. 명료도 위주로 소리를 설계하면, 음량이 작아도 잘 알아들을 수 있다. 반면 출력 중심으로 하면 소리가 커도 못 알아듣는다. 지하철 안내 방송을 생각해보라. 잘못 알아들을 때가 잦아 항상 모니터 화면을 보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세계 최고 공항이라고 평가받는 인천공항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명료도 중심으로 가기 위해선 스피커에서 나오는 직접음과 실내 반사음, 공조기 소음, 외부 소음 같은 환경 음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 좋은 스피커가 아니라 좋은 공간이 필요하다. 한국은 아직 소리 명료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축음향과 방송음향 시스템 기준안이 없다. 선진국은 음성 전달 지수(STI·Speech Transmission Index)라는 소리 명료도 개념을 통해 공간마다 기준을 정한다. 결국은 생명으로까지 연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꼭 관련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소리의 질을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누구나 학생 때 영어 듣기 시험을 보다가 소리가 잘 안 들린다는 불평을 한 적이 있지 않을까. 명료도 중심으로만 가도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마이크·앰프·스피커 등 전기 음향 중심의 시장에서 흡음재와 차음·방음재 등 소음과 진동을 다루는 환경 음향, 소리의 반사음을 다루는 실내 음향 등이 성장할 것이며, 소리를 듣기 좋게 만드는 전문가도 육성돼 고용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다.”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소리 산업을 주도할 가능성이 클까.
“당연하다. 지금은 방송과 영화, 소비자 시장 등 미디어 산업의 소리 분야가 한꺼번에 변화하는 시점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화질(UHD·Ultra High Definition) 지상파 방송을 시작했고, 다른 나라보다 한발 앞서 UHD 표준도 정했다. 미디어 산업에서도 한발 앞서 있다. 전자 제품과 반도체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디어 산업에서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는 실감 음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문화 콘텐츠는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다. 무엇보다 감성이 중요하다. 감성이 없는 소리는 단순한 기계음에 불과하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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