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인스타그램의 세로형 콘텐츠 서비스 ‘IGTV’, 짧은 동영상을 올릴 수 있는 ‘틱톡’, 카카오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이효리가 남편 이상순과 영상 통화하는 장면. 사진 인스타그램·틱톡·카카오TV
왼쪽부터 인스타그램의 세로형 콘텐츠 서비스 ‘IGTV’, 짧은 동영상을 올릴 수 있는 ‘틱톡’, 카카오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이효리가 남편 이상순과 영상 통화하는 장면. 사진 인스타그램·틱톡·카카오TV

포노 사피엔스의 분신(分身) 스마트폰은 대부분 세로로 긴 직사각 형태다. 말하는 입과 듣는 귀 사이를 이어야 하는 기기의 주된 역할 때문이다. 정형화한 모양은 사용 습관에 영향을 준다. 모바일 기기 정보 업체 사이언티아 모바일(Scientia Mobile)에 따르면 스마트폰 유저의 90% 이상이 게임을 하거나 사진을 찍을 때 기기를 세로로 들고 사용한다. 심지어 응답자의 72%는 가로 포맷의 동영상을 볼 때도 화면을 돌리지 않는다고 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포노 사피엔스의 마음을 훔쳐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세로 서비스’ 개발의 필요성을 점점 더 느낄 수밖에 없다.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업계는 스마트폰 화면 가득 영상물을 표출해야 하는 콘텐츠 분야다.

세로 영상의 선두 주자는 2016년 ‘15초 동영상’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를 들고 나타나 전 세계 10~20대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킨 ‘틱톡’이다. 틱톡은 다양한 영상 편집 도구를 활용해 누구나 손쉽게 짧은 세로 영상을 만들 수 있도록 해 큰 인기를 얻었다. 올해 4월 누적 다운로드 수 20억 회를 돌파한 틱톡의 분기 매출액은 7조원에 이른다. 네이버의 연간 매출액(2019년 기준 약 6조6000억원)을 웃도는 수치다.

틱톡이 등장하기 전까지 스마트폰 영상 콘텐츠의 화면 비율은 4 대 3에서 18 대 9에 이르기까지 가로 형태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틱톡의 세로 전략이 성공한 뒤 다른 영상 콘텐츠 업체들도 앞다퉈 세로 영상 제작·시청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유튜브의 ‘유튜브 스토리’, 인스타그램의 ‘IGTV’ 등이 세로형 콘텐츠 전용 서비스다.


삼성전자가 모바일 콘텐츠를 즐기는 데 익숙한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해 선보인 세로형 TV ‘더 세로(The Sero)’.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모바일 콘텐츠를 즐기는 데 익숙한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해 선보인 세로형 TV ‘더 세로(The Sero)’. 사진 삼성전자

인스타그램 창립자인 케빈 시스트롬은 IGTV 출시 소식을 알리며 “모바일 시대에는 동영상도 그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 IGTV에서는 세로형 영상을 마음껏 볼 수 있다”라고 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올해 9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 진출을 선언한 카카오가 세로형 콘텐츠 제작에 적극적이다. 카카오의 엔터 자회사 카카오M이 선보인 OTT 플랫폼 ‘카카오TV’는 모바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제공한다. 사용자가 카카오톡을 쓰면서도 앱을 여닫을 필요 없이 콘텐츠를 계속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카카오TV의 특징이다.

네이버도 이런 흐름에 맞춰 브이라이브와 네이버TV 등의 동영상 앱에 세로 영상 콘텐츠를 늘리고 있다.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가 서비스하던 퀴즈쇼 앱 ‘잼라이브’도 세로 형태로 표출된다. 잼라이브의 성장 가능성과 이용자 반응을 살핀 네이버는 올해 8월 150억원에 잼라이브를 인수했다.

포노 사피엔스를 겨냥한 기업들의 세로 혁명은 콘텐츠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전자 기기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삼성전자가 만든 TV ‘더 세로(The Sero)’가 대표적이다. 더 세로는 필요에 따라 화면을 가로나 세로로 전환할 수 있는 제품이다. 사용자가 더 세로에 탑재된 근거리 무선 통신(NFC) 인식부에 스마트폰을 접촉하면, 평소 즐겨 보던 소셜미디어(SNS)나 영화, 게임 등의 콘텐츠가 미러링(mirroring)을 통해 TV에서 재생된다.

삼성전자 TV 사업을 총괄하는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0’에 참석해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스크린(TV)을 최적화하겠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미국법인의 그레이스 돌란 상무는 “모바일 기기의 다양한 콘텐츠를 더 세로의 큰 화면에서 몰입감 있게 즐길 수 있어 밀레니얼 세대(1981~96년 출생)에게 파급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plus point

[Interview] 신종수 카카오M 디지털콘텐츠사업 본부장
“모바일로 봐야 100% 즐길 수 있는 콘텐츠 만들 것”

이소연 기자

신종수 서울대 미학 학사, 전 CJ ENM 라이프스타일 본부장 / 사진 이소연 기자
신종수
서울대 미학 학사, 전 CJ ENM 라이프스타일 본부장 / 사진 이소연 기자

“넷플릭스·유튜브·틱톡 등 해외 플랫폼과는 다르다. ‘오직 스마트폰’이라는 독자 노선을 걸어서 전례 없는 제3의 길을 만들겠다.”

카카오M은 지난 9월 ‘모바일 오리엔티드’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세로형을 포함한 모바일 최적화 동영상 콘텐츠를 내놓았다. 카카오TV는 예능·드라마·시사·영어 등 다양한 주제로 약 5~20분 분량의 ‘숏폼(짧은 영상)’ 콘텐츠를 선보인다. 일부를 제외한 모든 영상은 스마트폰 화면 비율에 딱 맞는 세로형이다.    

포노 사피엔스 소비자의 호응에 힘입어 카카오TV는 오리지널 콘텐츠 공개 일주일 만에 누적 조회 수 1300만 회를 기록했고, 두 달 만에 구독자 300만 명을 넘겼다. 카카오TV가 광고만 시청하면 무료라는 점에서 단순 비교는 어려우나, 이는 넷플릭스 가입자가 약 300만 명대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결과다.

‘이코노미조선’은 11월 4일 신종수 카카오M 디지털콘텐츠사업 본부장을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해외 기업들과는 차별화되는 한국 최초의 전문성 있는 세로형 영상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유튜브, 틱톡 등 스마트폰으로 보는 세로형 영상 플랫폼은 이미 많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유튜브나 틱톡 등에는 일반 사용자들이 만드는 아마추어 영상이 대부분이다. 방송사나 제작사 등 전문가들이 자본과 노하우를 투자해 만드는 전문적인 세로형 영상이 거의 없기에, 카카오TV가 틈새를 파고들었다. MBC에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책임졌던 박진경 PD 등 지상파 등에서 활약하던 전문가들이 카카오TV에 온 만큼, 기성 미디어의 ‘모바일화’에 도전하고 있다. 방송사와 달리 여기선 ‘60분짜리 예능 16부작’ ‘가로 화면’ 등의 형식적 제약이 없어서 혁신적인 콘텐츠를 시도할 수 있다.” 

넷플릭스, 웨이브 등 OTT에서도 전문가들이 콘텐츠를 만든다.
“그들이 생산하는 콘텐츠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TV나 영화관 스크린으로도 볼 수 있지 않나. 그것들은 기성 영화·방송 업계가 만든 ‘모바일로도 볼 수 있는 영상’이지 모바일에 특화된 창작자들이 만든 ‘꼭 모바일로 봐야 내용과 형식을 100% 즐길 수 있는 영상’이 아니다.” 

어떤 점에서 카카오TV 세로형 영상이 모바일에 최적화된 건가.
“아예 스마트폰 화면상에서의 움직임을 콘텐츠의 주요 주제로 잡기도 한다. 시청자가 매일 스마트폰으로 하는 행동을 출연진과 함께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참여형’ 콘텐츠다. 가수 이효리씨가 출연했던 예능 ‘페이스아이디’에서 이씨가 남편 이상순씨와 영상 통화하는 장면을 보며 함께 통화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예능 ‘톡이나 할까’에선 출연진이 모두 앉아 서로 카카오톡을 하는 화면 내용과 사람의 모습이 세로 화면에 함께 나와, 같은 장소 속 같은 ‘톡방’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전준범 기자,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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