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진 시드니공대 금융·경제학 / 사진 이소연 기자
조형진
시드니공대 금융·경제학 / 사진 이소연 기자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 개수보다도 경쟁자 수가 많다. 옛날과 달리 그들이 정확히 몇 명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크거나 멀리 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 눈앞이 캄캄하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커니 코리아 조형진 부사장이 점심 식사에서 한 대기업 고위 임원에게 들은 이야기다.

조 부사장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 잠재적 경쟁자들이 스마트폰의 등장이라는 하나의 사건에서 탄생했다고 말했다. 큰 자본이나 인프라 없이도 소비자와 만남이 쉬운 모바일 세상. 인터넷 결제보다도 빠르고 간편한 모바일 간편 결제가 자리 잡고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이 확산한 것 역시 도화선이 됐다.

포노 사피엔스 소비자의 절대적인 지지에 힘입어 광고지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시작했던 배달의 민족이 아시아나항공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인 약 4조원에 매각되고, 송금 앱으로 시작한 토스의 증권사 출범이 임박하면서 기성 기업의 불안감이 최고치에 달했다.

구글 앱 마켓인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입점한 기업 수는 지난해 12월 기준 350만 개를 넘겼다. 2009년 12월 당시 입점 앱은 1만6000개에 불과했다. 10년 사이 약 200배 넘게 증식한 이들이 모두 기업들의 잠재적 경쟁자다.

명확한 전략이 부재한 가운데 기업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롯데나 신세계가 음식 배달 시장 진출에 나선 것처럼 새로운 경쟁자들이 선점하고 있는 시장에 우선 뛰어들기도 하고, 일부는 이 기업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그대로 따라 하기도 한다.

조 부사장은 ‘꽁무니 쫓기’식 전략은 오늘날 비즈니스 환경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했다. 조 부사장은 17년간 삼성전자와 SK텔레콤 등 국내 주요 기업뿐 아니라 미국, 호주, 홍콩에서 여러 기업의 전략 컨설팅을 담당했다. ‘이코노미조선’은 11월 3일 조 부사장을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경쟁자가 누가 될지 모르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기업들은 경쟁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자를 따라가는 기존 기업들의 사업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했다.
“기존 대기업들은 경우의 수를 활용한 시나리오식 경영 전략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주요 경쟁자를 설정하고 이들의 주요 목표와 실적, 동향 등을 분석한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실현 가능성이 큰 미래의 모습을 1안부터 5안까지 논리적으로 만들어 놓고 여기에 맞춰 목표를 설정하고 리스크를 관리한다.”

이 전략의 한계는 무엇인가.
“우선 과거처럼 경쟁자를 몇으로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기업이 준비한 시나리오 내에서 미래 리스크를 충분히 관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모니터링조차 하지 않았던 작은 앱이 갑자기 큰 경쟁자가 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위험은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불확실성 속에서 명확한 하나의 계획 없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표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포노 사피엔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성장한 기업에 대한 시나리오도 일부 이미 대기업 전략에는 있었다. 다만 그것 말고도 기존 경쟁자에 대응하는 너무나도 많은 다른 시나리오가 있었고, 모든 안에 대한 준비를 하다 보니 결국 모바일 앱 기반의 스타트업이 주요 경쟁자로 등장한다는 시나리오에는 확신과 의지를 갖고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기업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가.
“경쟁자를 기반으로 시나리오를 계획하는 전략이 아니라, 소비자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실행 중심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경쟁자가 누군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소비자가 누군지는 명확하다. 포노 사피엔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욕구와 불만을 가졌는지, 기업에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존재다. 당장 이들의 의견을 취합해 분석하고 여기에 대응하는 방안을 세우면 그것이 바로 전략이다.”

이미 모든 기업은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
“물론 모든 기업은 어떤 방식으로든 소비자 의견을 수렴한다. 그러나 해당 의무를 특정 부서에 완전히 위임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임원급 리더가 없어 힘이 약하고, 기업 전체 전략 및 실무에 실제 적용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반면 포노 사피엔스 소비자가 열광하는 기업들은 ‘애자일(agile·민첩한)’한 소비자와 즉각적인 소통을 한다. 만약 앱에 문제가 하나 생겨 바로 ‘별점 테러’를 당하면, 이 기업들은 즉각 전 구성원이 참여하는 회의를 열어 문제를 해결한다. 경쟁자가 너무 거대했기 때문에 이들은 되레 소비자에게 집중하는 데 익숙하다. 포노 사피엔스는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바로바로 반영해주는 기업에 열광한다.”

대기업 등 기존 기업은 큰 규모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나. 스타트업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소비자 의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정도를 바꾼다면 개선할 수 있다. 기존 기업들은 비용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소비자 의견 청취 조직을 단순 서비스센터로만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마저도 시장 조사 단체 등에 모두 외주로 위임하는 데에 그치기도 한다. 책임질 수 있는 고위급과 각 부서의 이해 당사자들이 없는 부서는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나.
“임원으로 CCO(Chief Customer Officer·최고고객책임자)를 임명하고, CCO가 과거처럼 기업 고객, 즉 제휴·협력 업체와 관계만 관리하는 게 아니라 일반 소비자 의견을 직접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CCO가 전담하는 고객 관리 부서에는 다양한 부서의 구성원을 모아서 소비자 피드백을 함께 정리하고 부서별 대응책을 바로 마련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시가 있을까.
“미국의 통신 기업 ‘T-모바일(T-Mobile)’이 최근 설립한 고객 관리 전담 조직인 ‘TEX(Team of Expertise)’가 있다.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대기업이 비용을 줄인다는 단기적인 목표 때문에 고객센터를 하청 기업에 외주화하고 오프쇼어링(기업 일부를 해외 기업에 맡겨 처리하는 아웃소싱 형태)하고 있다. 그러나 T-모바일은 되레 콜센터에 더 큰 투자를 했다. TEX를 다양한 부서에서 온 30인 팀의 연합체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역, 연령, 직업 등 고객 세분화 지표에 따라 고객 관리 업무를 나누고 상담 내용을 분석해 실무진 단계에서 즉각 반영했다. 그 결과 고객 로열티를 측정하는 지표인 NPS(순 고객 추천 지수)는 50% 이상 증가했고, 고객 응대 실수로 인한 보상 비용은 37% 하락했다.”

결국 소비자 의견 청취에 많이 투자하라는 말 같다.
“그렇다. 소비자가 왕인 시대인데 왕을 직접 마중 가야지 남이 대신 가주면 안 되지 않겠나.”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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