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20’ 출시 행사에 참석한 현지인이 제품을 체험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올해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20’ 출시 행사에 참석한 현지인이 제품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포노 사피엔스의 범주가 X세대(1970~80년 출생)나 Z세대(1997~2010년 출생)처럼 태어난 연도를 기준으로 정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처럼 쓰는 사람을 일컫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기성세대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정보기술(IT) 기기와 함께 성장해온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포노 사피엔스에 좀 더 가까울 것이다. 비즈니스 특성상 포노 사피엔스의 마음을 사야 하는 기업은 젊은 인구가 최대한 많은 시장을 찾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수년 전부터 국내외 많은 기업이 동남아시아(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일대를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보고 진출하는 배경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업들은 젊은 인구가 넘쳐나는 아시아 개발도상국을 ‘포노 사피엔스의 천국’이라고 표현한다.

먼저 아시아 지역 내 주요국의 특성부터 살펴보자. 기업들이 최근 가장 선호하는 아시아 국가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의 경우 인구수가 2억7000만 명으로 세계 4위에 해당하는데, 평균 연령은 29세에 불과하다. 올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악재가 터지긴 했으나 그전까지 연평균 5%의 안정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포노 사피엔스의 무기인 스마트폰 시장도 세계 5위 규모일 만큼 크다.

필리핀은 동남아 국가 가운데 인구수가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많은 1억1000만 명이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24세로 상당히 젊다. 경제성장률도 6~7%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는 베트남 역시 젊은 인구구조를 바탕으로 매년 7%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자랑한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성장률이 3%에 그칠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에 다시 예년 수준을 회복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섬이 많은 동남아의 지리적 특성상 무선 기반의 모바일 사용 환경이 발달했다는 점도 포노 사피엔스 탄생에 유리한 배경이 됐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성장 속도가 빠른 동남아 국가 중 하나인 말레이시아의 모바일 전자상거래 시장은 19억달러(약 2조1111억원) 규모로 전체 전자상거래 시장의 47%를 차지한다. JP모건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모바일 전자상거래는 41%의 연평균 성장률(CAGR)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무역 갈등, 당국 규제 등 리스크 요인이 많은 중국도 수치적인 조건만 보면 여전히 매력적인 포노 사피엔스의 나라다. 14억 명이 넘는 엄청난 인구가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을 형성하고 있어서다. 디바이스 시장만 큰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작동하는 각종 서비스 시장도 미국에 맞설 정도로 성장했다. 알리바바를 비롯해 틱톡을 만든 바이트댄스,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 등 포노 사피엔스를 사로잡은 다수의 기업이 중국에서 탄생했다.


한 인도인이 동영상 플랫폼 ‘틱톡’ 앱이 켜진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AFP연합
한 인도인이 동영상 플랫폼 ‘틱톡’ 앱이 켜진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AFP연합

앞다퉈 아시아 향하는 韓 기업들

환경이 이렇다 보니 아시아의 포노 사피엔스를 공략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도전도 이어지고 있다. 필리핀에서 활동 중인 쉐어트리츠는 모바일 기프티콘 서비스 업체다. 카카오톡의 ‘선물하기’와 비슷한 기능을 필리핀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이 회사를 이끄는 이홍배 대표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필리핀 법인을 담당하다가 창업에 뛰어들었다. 동남아의 인터넷 환경이 유선이 아닌 모바일 위주로 성장했다는 점, 필리핀 젊은이들이 가벼운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를 즐긴다는 점 등을 눈여겨봤다.

KT는 5세대 이동통신(5G) 기반 콘텐츠 생중계 서비스를 중화권에 공급하기 위해 최근 차이나모바일의 자회사 미구(Migu)와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스마트폰으로 한류 아이돌 영상을 즐겨 보는 포노 사피엔스를 정조준한 시장 진출 사례다. 국내에서 차이나모바일을 통해 K콘텐츠를 정식으로 수출하는 건 KT가 처음이다. 김훈배 KT 커스터머신사업본부 전무는 “K팝뿐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더 많은 글로벌 사용자에게 선보이겠다”라고 했다.

유통 업체의 경우 현지 시장을 직접 공략하는 대신 이미 구축된 플랫폼에 자사 상품을 등록하는 식으로 아시아 시장 문을 두드린다. 올해 10월 애경산업은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 ‘쇼피(Shopee)’를 통해 대표 화장품 브랜드 ‘에이지 투웨니스(AGE 20’s)’와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루나(LUNA)’를 선보였다. 쇼피는 6억 명의 인구를 보유한 동남아 최대 온라인 장터로, 싱가포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태국·필리핀·대만 등 아시아 7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지역별 사용자 특성을 고려한 모바일 기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 쇼피의 특징이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발간한 ‘아세안 화장품 시장 진출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동남아 지역은 중화권에 이어 한국 화장품 수출 규모가 가장 큰 시장이다. 아세안 회원국 중 6개 나라가 화장품 수출 상위 15개국에 포함될 정도다. 일명 ‘손흥민 샴푸’로 유명한 TS샴푸를 판매하는 TS트릴리온도 10월 쇼피에 브랜드관 문을 열고 브랜드 알리기에 나섰다. 장기영 TS트릴리온 대표는 “아세안 시장은 한국 제품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곳”이라며 “한국산 탈모 증상 완화 샴푸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브랜드 인지도를 키우겠다”고 했다.

드래곤플라이·한빛소프트 등의 국내 게임 업체는 잇달아 베트남 진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베트남의 젊은 포노 사피엔스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베트남 엔터테인먼트 업체 아포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베트남 국민의 하루 평균 휴대전화 사용 시간은 3시간 42분에 달했다. 이 중 23%는 모바일 게임에 시간을 쏟았다.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더인벤션랩을 이끄는 김진영 대표는 “베트남은 스마트폰 보급률이 90%에 달할 정도로 높고, 속도 빠른 4세대 이동통신(LTE)과 저렴한 데이터 정액 요금제가 받쳐준다”고 했다.

중동 지역의 경우 가족 중심의 폐쇄적인 무슬림 문화가 지배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현지에 진출한 기업 이야기를 들어보면 틈새시장은 있다. 중동 의료 관광 중개 기업 하이메디를 이끄는 이정주 대표는 아랍인은 소셜미디어(SNS) 이용률이 높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아랍에미리트(UAE) 인구의 99%가 하루에 한 번 이상 SNS를 꼭 이용한다”라며 “20~30대 인구 비중도 50%가 넘는다”라고 했다. 터번과 히잡을 쓰고 있어도 포노 사피엔스의 성향은 지구촌 어디나 똑같다는 것이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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