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서울시 동대문구 동부경로당에 위치한 ‘너나들이 공동 작업장’에서 9명의 할머니들이 검은색 원피스와 낙엽 수거용 자루를 만들고 있다. 사진 김소희 기자
9월 5일 서울시 동대문구 동부경로당에 위치한 ‘너나들이 공동 작업장’에서 9명의 할머니들이 검은색 원피스와 낙엽 수거용 자루를 만들고 있다. 사진 김소희 기자

9월 5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구립 동부경로당을 찾았다.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긴 2층 건물 위쪽에는 ‘너나들이 공동 작업장’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여느 경로당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화투판을 둘러싼 어르신들의 담소 대신 ‘득득득’ 하는 재봉틀 소리가 공간을 메웠다. 66㎡(20평) 남짓한 공간에 9명의 60~70대 노인들이 땀을 송골송골 흘리며 재봉 작업에 몰입하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 2017년 출범한 에코리폼 사업단의 일원이다.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작업장에서 외주받은 옷이나 앞치마, 에코백 등을 만들거나 수선한다. 이날 작업물은 성당 성가대에서 의뢰받은 검은 실크 원피스와 동대문구청에서 요청한 폐현수막을 이용한 낙엽 수거용 자루였다. 완성된 낙엽 수거용 자루를 정리하거나 원피스의 안단을 손바느질로 직접 꿰매거나, 재봉틀을 이용해 옷감을 잇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에코리폼 사업단은 정부가 지원하는 ‘노인 공공 일자리’ 사업의 일환이다. 동대문구청이 동대문구 노인지회에 의뢰해 사업을 운영한다. 9명이 매달 옷을 만들어 손에 쥐는 돈은 보통 100만원 안팎. 수익금은 공평하게 나눠가진다. 정부에서 할머니 한 명당 매달 17만원을 보조금으로 지급해 최종 수익은 월 27만원 정도가 된다. 이곳에서 반장 역할을 맡고 있는 전태분(74)씨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적은 금액일지라도 늙어서 일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행운”이라면서 “한 푼 두 푼 모아서 손녀 교복도 사줬다”고 했다.

이들은 낮은 월급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일이 재밌어서 점심시간도 반납하고 초과근무에 나설 때도 있다. 직접 동대문시장에 나가 원단도 사고, 소비자의 신체 사이즈도 잰다. 이들의 계약 기간은 1년 주기지만, 재능을 살린 직장이기에 재참여율도 높다.

어느새 직장 동료가 된 이들이 모인 시점은 10년도 넘었다. 이곳에 있는 할머니들 9명 중 7명이 2000년 장안동 구민회관에서 생활한복 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나 재봉 기술을 익혔다. 2010년부터는 구청의 의뢰를 받아 저소득층에게 수의를 지어주는 봉사를 시작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구청과 연이 닿아 사업으로까지 발전했다.


‘단기 알바’ 일자리가 전체의 83%

에코리폼 사업단 같은 노인 공공 일자리는 경제활동에서 소외되기 쉬운 노인들을 보조금을 통해 지원하는 효과를 가진다. 연금과 같은 현금성 복지보다 노인들의 자아실현에 보다 도움이 되는 사업이다. 정부도 이런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해 노인 공공 일자리를 내년에 대폭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기획재정부가 8월 29일 발표한 ‘2020년 예산안’을 살펴보면 정부는 노인 일자리를 74만 개로 올해보다 13만 개 늘릴 계획이다.

문제는 에코리폼 사업단 같은 안정된 노인 공공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노인 공공 일자리는 공익활동형, 사회서비스형, 시장형, 인력파견형으로 나뉜다. 에코리폼 사업단은 노인들의 기술력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시장형 일자리다. 그런데 ‘이코노미조선’이 확보한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8월 기준 시장형 일자리는 총 7만3544개의 일자리 중 11%(8453개)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일회성 아르바이트라고 지적받는 공익활동형 일자리의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았다. 공익활동형 일자리는 무려 6만1095개로 전체 일자리의 83%를 차지했다. 공익활동형 일자리는 구청 업무를 지원하는 봉사활동이 주요 업무다. 자리를 지키거나 형식적으로 활동하는 업무가 많다. 길거리에서 담배꽁초 등 쓰레기를 줍는 ‘지역사회환경개선봉사’가 1만796개, 놀이터를 지키는 ‘놀이터등공공시설봉사’가 8388개에 달했다.

시장형 일자리와 공익활동형 일자리에 들어가는 서울시 예산은 극명하게 차이 난다. 시장형 일자리 예산은 152억5800만원으로 공익활동형 일자리 예산(1034억1100만원)의 14%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로서는 노인의 재능을 기반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시장형 일자리보다 구청이 손쉽게 고민 없이 만들 수 있는 공익활동형 일자리가 많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주먹구구식으로 일자리 수를 늘릴 것이 아니라 고용의 질을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술력이 있는 노인들도 단순 근로 형태의 공공 일자리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고용 전문가가 노인들의 기술력을 체계적으로 심사해 그들이 최대 효용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시장형 일자리 늘려야…거래처 확보 관건

장기적 관점에서 시장형 일자리 수를 늘리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에코리폼 사업단처럼 장기간 교육받은 노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사업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 일자리인 만큼 시장형 일자리도 개선점이 남아 있다. 시장형 일자리를 지원하는 구청이나 복지관에서는 안정적인 거래처를 확보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름은 ‘시장형’이지만 사실상 구청 내부에서 발주받는 경우가 대다수다. 공공기관이 소규모 사업단을 홍보하는 데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한 서울시 소재 구청 관계자는 “음식료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판매가 부진해 한 달 수익이 50만원 정도에 그친다”고 했다.

노인 공공 일자리 사업을 주관하는 보건복지부에서 지원책을 마련했지만 역부족이다. 온라인 웹사이트 하나하나몰은 보건복지부가 지원하고 한국시니어클럽협회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이다. 이곳에서 시장형 일자리 사업단의 판매 상품을 판매한다. 하지만 쿠팡과 같은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활보하는 시기에 별다른 경쟁력이 없어 이용률이 저조하다. 품목 수도 적어 사람들이 방문할 유인이 떨어진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시장형 일자리와 같은 민간형 일자리의 인프라가 위축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면서 “고학력 베이비부머 세대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공형 일자리 창출에도 매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소희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