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영어가 적힌 그림판을 만지고 있다.
한 아이가 영어가 적힌 그림판을 만지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사는 직장인 안희윤(34)씨는 올해 초부터 6세 딸을 사설 유아 영어학원에 보내고 있다. 한 달 교습비만 150만원이 넘지만, 다들 영어 조기 교육을 한다는 말에 일반 유치원 대신 사설 유아 영어학원을 택했다. 매달 나가는 생활비와 주택자금 대출 등을 생각하면 월급으로 감당하기 빠듯한 금액이지만 영어교육은 필수라는 생각에 선택했다.

유아(만 4~6세)를 대상으로 한 영어교육 시장이 뜨겁다. 학부모의 높은 교육열을 반영하듯 이른바 ‘영어유치원’이라고 불리는 사설 유아 영어학원(이하 영어학원)의 월평균 교습비가 치솟고 있다. 영어학원은 값비싼 의대보다 더 많은 돈이 든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 9월 기준 영어학원 월평균 교습비는 90만7000원으로 지난해보다 6만6000원(7.8%) 올랐다. 교재비와 셔틀버스 이용비 등 기타 비용을 포함하면 월평균 비용은 96만6000원으로 오른다. 이는 월평균 16만원대인 일반 사립 유치원보다 5배 이상 비싼 금액이다. 1년으로 따지면 영어학원 비용은 총 1088만4000원(기타 비용 제외)이다. 1년 치 대학 등록금 평균인 671만원은 물론 가장 등록금이 비싼 의학 계열(963만원)보다 비싸다.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오락가락하는 영어교육 정책을 편 것이 영어학원 시장을 키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교육은 평생에 걸쳐 이뤄지는 만큼 일관성 있는 정책이 필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탓이다.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보류→허용’

대표적인 사례는 교육부가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을 금지하겠다고 2017년 12월 발표했다가 2018년 10월 철회한 일이다. 당시 교육부는 유아 발달 단계로 볼 때 유치원에서의 영어수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방과 후 영어수업을 2018년 3월부터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여론은 거세게 반발했다. 유아 자녀를 둔 학부모 대부분이 영어교육을 시키고 싶어 하는 상황에서 방과 후 영어수업을 금지한다고 해서 영어 조기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방과 후 영어수업을 막는다면 오히려 사설 영어학원을 찾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

결국 교육부는 11개월간의 재검토 기간을 거쳐 유치원 방과 후 영어교육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현재 유치원은 학부모가 신청한 유아를 대상으로 하루 1시간 이내로 방과 후 영어수업을 하고 있다.

김철 한국유치원 총연합회 대변인은 “학부모들은 유치원의 영어교육 정책 방향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며 “언제 또 유치원 방과 후 영어교육이 금지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차라리 맘 편히 자녀를 사설 영어학원에 보내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유치원 영어교육 정책이 흔들리는 사이 영어학원 수는 증가했다. 2017년 말 기준으로 전국에 474개였던 영어학원이 2018년 말 494개로 4.2% 증가했다. 최근에는 증가세가 더 가파르다. 2019년 9월 말 현재 영어학원은 558개에 달한다. 9개월 새 13%나 늘었다.


금지했던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 1년 만에 재개

초등학교 1~2학년의 방과 후 영어수업 정책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교육부는 2014년 초등 1~2학년에 대한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를 추진했다. 1~2학년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는 것은 선행 학습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영어 배우는 것까지 정부가 막냐”며 반발했고, 교육부는 시행 시기를 늦췄다. 이후 4년 뒤인 지난해 3월부터 초등 1~2학년의 방과 후 영어수업이 전면 금지됐다.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1~2학년을 제외하고 3~6학년만을 대상으로 영어 방과 후 수업을 편성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초등 1~2학년의 방과 후 영어수업이 다시 가능하게 됐다. 이를 허용하는 공교육정상화법 개정안이 3월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다. 문제는 이미 올해 1학기가 시작된 이후에 법이 통과되면서 교육 현장에서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교육 업계 관계자는 “개정안이 통과될지 말지 모르는 상황에서 초등 1~2학년을 대상으로 한 영어수업을 준비할 수 없었다”며 “방침이 학기 중에 바뀔 경우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교육은 100년 후를 내다보고 세워야 할 계획이라는 뜻에서 흔히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로 불린다. 그러나 한국의 영어교육 제도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부침을 겪었다.

영어가 초등학교 정식 교과목으로 처음 도입된 것은 1997년 김영삼 정부 때다. 당시 정부는 초등 3학년부터 영어를 필수 교과목으로 도입하면서 3~4학년은 일주일에 1시간, 5~6학년은 일주일에 2시간씩 수업하도록 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영어교육을 초등 1~2학년으로 확대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초등 3~4학년 영어교육 시간이 일주일에 1시간에서 2시간으로, 5~6학년은 일주일에 2시간에서 3시간으로 1시간씩 늘어났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에 일관성이 결여되면서 학부모들이 특히 유아·초등 영어의 공교육을 불신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그 결과 영어교육의 상당 부분이 사교육 시장에 맡겨지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정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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