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고선규 KU마음건강연구소 연구교수가 서울 강남구 마인드웍스 상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10월 30일 고선규 KU마음건강연구소 연구교수가 서울 강남구 마인드웍스 상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스스로 삶을 중단하는 행위’인 자살(自殺)은 남겨진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깊은 상흔을 남긴다. 10월 14일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25)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후 사람들은 설리를 자살로 내몬 ‘원인 제공자’를 찾기 시작했다. 설리 관련 기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물에 집요하게 악성 댓글을 달던 ‘악플러’가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로 지목됐다. 뒤이어 한때 설리와 연인 관계였던 가수 최자, 탈퇴한 걸그룹 에프엑스 멤버, 심지어 MC로 출연하던 예능 프로그램 ‘악플의 밤’ 제작진에게도 화살이 돌아갔다. 그러나 경찰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은 설리가 평소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는 것과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자필 유서를 남겼다는 것뿐이다.

애도 상담 전문가인 고선규 KU마음건강연구소 연구교수는 “최자와 에프엑스 멤버, ‘악플의 밤’ 제작진은 이번 사건으로 정신적 외상을 입은 ‘자살 사별자(자살로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난 사람)’로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자살 사별자에게 책임을 묻는 풍조로 인해 마음껏 고통을 호소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상심리학 박사이자 중앙심리부검센터 부센터장을 역임한 자살 문제 전문가로, 올해 6월부터는 자살 사별자 자조 모임인 ‘메리골드’를 이끌고 있다. 

고 교수는 “자살 사별자는 일반인보다 자살할 확률이 8.3배나 높은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며 “제대로 된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평생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게 된다”고 했다. ‘이코노미조선’은 10월 30일 서울 강남구 마인드웍스 심리상담센터에서 고 교수를 만났다. 마음의 안정을 돕는 은은한 향초 향기로 가득한 상담실. 고 교수는 자살 사별자가 처한 상황과 이들의 회복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조 모임은 자살 사별자가 외부의 편견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고 위로받는 공간이다.
자조 모임은 자살 사별자가 외부의 편견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고 위로받는 공간이다.

자살 사별자가 심한 고통을 겪는 이유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는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자살 사별자가 처한 상황이 바로 이렇다. 장례라는 것은 ‘이 사람이 죽어 내 곁을 떠났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교통사고나 질병 등 일반적인 죽음과 달리 자살은 그 사인(死因)부터가 불가해의 영역이다. 빚을 많이 져서, 평소에 우울증을 심하게 앓아서, 학교나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해서, 연인에게 버림받아서. 이런 것들은 단편적인 요인일 뿐 전체를 설명하는 사인이 되진 못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만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살 사별자는 ‘사랑하는 사람이 왜 내 곁을 떠났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이해할 수 없으니 인정할 수 없고, 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그 사람 마음속에서는 영원히 장례식이 끝나지 않는 것이다.”

자살자에 대한 책임을 사별자에게 묻는 풍조가 있다.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자살 사별자에게 ‘뭔가 징후가 있었을 텐데 가까운 사람이 왜 몰랐을까’ ‘가족이 제 역할을 못 해서 막지 못한 게 아닌가’라고 추궁하면, 상실로 인한 슬픔을 표현조차 못 하게 된다. 그래서 자살 사별자 가운데는 사망 원인을 사고사 등으로 위장하거나 아예 장례식을 치르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억지로 일상생활을 이어 나가는데, 치유되지 않은 정신적 외상이 언젠가는 터진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자살 사별자가 많은 이유다.”

‘자조 모임’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
“같은 경험을 한 당사자가 아니면 ‘삶이 장례식이 돼버린 문제’를 어떻게 공감하고 위로하겠나. 자조 모임을 통해 자살 사별자는 안전하게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고 위로받는다.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정상화 과정을 거쳐, 먼저 회복한 다른 사별자의 경험을 공유한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장례식장의 시계가 비로소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조 모임에서 ‘사별자 리더’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그날 이후 자살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본 적 없다’는 신입 사별자에게 ‘여기선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안심시키고, 같이 울면서 공감하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조언하는 것은 나 같은 상담사는 맡을 수 없는 역할이다. 오히려 내 역할은 다른 사별자의 감정을 모두 받아내는 리더의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것이다. 남의 상처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내 상처를 다시 후벼판다는 얘기도 되기 때문이다.”

회복하는 과정은 어떤 단계를 거치나.
“회복은 자살 사별자가 다른 일반적인 사별자처럼 돼가는 과정이다. 고인의 죽음은 여전히 슬프지만, 그 죽음에서 ‘자살’을 떼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 모임의 목표다. 묵힌 감정을 전부 게워내고, 미워할 사람을 한 번씩 다 미워해 보고 나면 ‘자살은 원래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람이 내 곁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제 애도의 단계로 넘어가 고통의 시간을 충실히 견뎌내야 한다. 그렇게 사계절을 지나 다시 그 사람의 기일을 맞이하면, 비로소 ‘이제야 장례식이 끝났구나’하고 실감하게 된다.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가 된 것이다.”

조직에서 자살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조직 내부에 자살자가 생겼을 때, 대부분의 리더는 일단 은폐하려고 한다. 가장 위험한 대처 방식이다. 가족은 아니지만 어제까지 함께 일했던 사람이 자살한 상황에서 정도는 덜하지만 조직 구성원도 일종의 자살 사별자가 된 것이다. 덮어놓고 넘어가면 언젠간 터질 시한폭탄이 된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데, 조직 자체를 거대한 자조 모임으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사건을 공론화해야 한다. 이 사람이 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조직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구성원과 함께 충분히 고민하고 애도해야 한다.”


고선규는 누구?

임상심리전문가 그룹 ‘마인드웍스’ 대표로, 특히 애도 상담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부센터장으로 근무하며 전국의 자살 사별자들을 직접 만나 면담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마음건강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자살 사별자 자조 모임인 ‘메리골드’를 이끌고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자살학회에서 인증한 심리부검전문가(PAI‧Psychological Autopsy Investigator)이기도 하다.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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