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 회장인 빌 게이츠가 2019년 10월 9일(현지시각) 프랑스 중부 리옹에서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글로벌 펀드의 자금 지원 회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 회장인 빌 게이츠가 2019년 10월 9일(현지시각) 프랑스 중부 리옹에서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글로벌 펀드의 자금 지원 회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빌 게이츠(65)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가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그는 3월 13일(현지시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링크드인에 올린 ‘나의 시간에 집중하기(Focusing my time)’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를 떠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퇴 이유에 대해서는 “전 세계 보건과 개발, 교육, 기후 변화 등 자선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는 그가 1975년 친구 폴 앨런과 함께 회사를 설립한 지 45년 만의 일이다.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에서 떠난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그와 마이크로소프트는 개인용 컴퓨터(PC) 산업을 형성하고 성장시키는 데 막대한 역할을 했다. 컴퓨터의 부속물로 취급됐던 소프트웨어를 거대 산업으로 만든 것도 그와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빌 게이츠의 삶을 다섯 가지 주요 장면으로 조망했다.


장면 1│1975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어린 시절 친구였다. 그들이 함께 어울리던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은 일반인이 컴퓨터를 접하기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들은 이미 컴퓨터 마니아였다. 1973년 앨런은 한 잡지에 실린 ‘알테어 8800’이라는 신형 컴퓨터 기사를 복사해서 게이츠에게 보여줬다. 당시 게이츠는 하버드대 응용수학과생이었고 앨런은 허니웰이라는 회사의 프로그래머였다. 기사를 본 게이츠는 알테어 8800 제작사인 MITS에 전화를 걸어 베이직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MITS는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알테어 베이직(Altair BASIC)’이라는 이름으로 배포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 일은 그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회사를 설립해도 되겠다는 경험을 얻은 것이다. 결국 그들은 1975년 4월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했고, 게이츠는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장면 2│1981년 애플과 격차 벌린 소프트웨어 라이선싱 전략

그들은 회사 설립 초기 베이직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던 1980년 여름, 그들은 컴퓨터 제조사 IBM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당시 IBM은 PC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이를 구동시킬 운영체제가 필요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기회를 잡았다. MS DOS가 나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게이츠는 소프트웨어 산업 역사상 막중한 의미가 있는 결정을 했다. IBM이 MS DOS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주장하지 않도록 요구한 것이다. 저작권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당 사용권을 받는 라이선싱 방식을 요구했다. 당시는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부속물로 취급됐기 때문에 이와 같은 요구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급했던 IBM은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 계약은 이후 수십 년간 마이크로소프트가 PC 시장을 지배하게 한 근간이 됐다. IBM 경쟁사들은 IBM PC와 유사한 컴퓨터를 금방 만들어냈고, IBM과 마찬가지로 운영체제가 필요했다. IBM과 비슷한 컴퓨터를 만드는 모든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라이선싱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기본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됐다. 당시 애플도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애플은 소프트웨어를 별도로 판매할 계획이 없었다. 자신들이 만든 운영체제는 자신들이 만든 컴퓨터에만 사용됐다. 이 결정적인 차이로 인해 애플은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마이크로소프트를 넘어서지 못했다.


장면 3│1985년 애플의 묵인하에 윈도 출시

1983년 애플은 ‘리사’라는 컴퓨터를 발표했다. 세계 최초로 그래픽 기반의 사용자 인터페이스(GUI·Graphic User Interface)를 탑재한 PC였다. 이를 본 게이츠는 자극받았다.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는 GUI 운영체제를 탑재한 최초의 ‘MS WINDOWS(윈도)’를 선보였다. 하지만 윈도 1.0은 리사의 복제품에 지나지 않았고 시장에서 실패했다.

당시 애플은 곧바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다만 애플의 존 스컬리 CEO와 게이츠는 애플이 무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그램 엑셀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이후 애플의 발목을 잡았다. 1987년 윈도 2.0이 나오자 참을 수 없어진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손을 들어줬다.


장면 4│2000년 게이츠의 CEO 사퇴

윈도는 3.0, 3.1 버전이 나오면서 인기를 끌었다. 이어 윈도 95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회사가 됐다. 이는 게이츠를 세계 제일의 부자로 만들어줬다. 하지만 회사는 또 다른 위기를 맞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 시장 독점이 심해지면서 회사를 분할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2000년 게이츠는 초창기 마이크로소프트 멤버이자 친구인 스티브 발머에게 CEO직을 물려줬다.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CEO에서 물러났지만, 게이츠는 2006년까지 최고소프트웨어아키텍트(Chief Software Architect)를 맡았고, 2008년까지는 이사회 의장직도 유지했다.

스티브 발머가 지휘하는 마이크로소프트는 과거와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IBM과 함께 PC 시대를 연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 시대에는 큰 힘을 쓰지 못했다. 애플의 재도약, 구글의 화려한 등장을 지켜보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그저 그런 회사가 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14년 사티아 나델라 CEO가 부임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되살아났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장면 5│자선 재단 설립과 이사회 퇴진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 CEO를 하던 1994년 아내 멜린다 게이츠와 함께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빈곤, 질병 퇴치 등 글로벌 난제 해결에 목적을 두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천’에 따르면 이 재단은 1995년 1월부터 2017년 말까지 455억달러(약 55조원)를 기부했다. 대부분의 금액이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등 질병을 예방하고 퇴치하는 데 쓰였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2017년 세계 각지의 자선단체들과 손잡고 ‘전염병 대비 혁신 연합(CEPI)’도 출범시켰다. 올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자 2월 1억달러를 기증하고 가정용 코로나19 진단 키트 보급 운동에도 나섰다. 그리고 3월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를 떠나며 자선 활동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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