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암호화폐)의 대표 격인 비트코인의 상승이 심상치 않다. 2018년 이후 주춤했던 가격은 최근 1만9000달러(약 2100만원)를 넘어서며 2017년 말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로 각국이 유동성을 풀며 시중에 돈이 넘쳐나고 있고,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로 투자자들의 성향이 공격적으로 바뀌면서 앞으로도 비트코인의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암호화폐 시황 분석 사이트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11월 24일 오후 9시 44분 기준으로 비트코인은 1만9154.5달러(약 2120만원)를 기록했다. 연초만 해도 7200달러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들어서만 2.7배 상승했는데, 2017년 말 기록했던 역대 최고치(2만35달러)에 근접한 수준이다. 비트코인의 폭등은 주식시장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11월 24일 2617.76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 코스피지수는 연초 들어 19.1% 올랐다. 같은 기간 테슬라와 애플 등 기술주(株)의 호황으로 올해 들어서만 사상 최고치를 수차례 갱신한 나스닥지수의 상승률은 30%를 웃돈다.

비트코인은 2017년 말 2000만원을 넘어서며 한국에서 ‘광풍’을 일으켰다. 비트코인의 상승을 염원하는 투자자들의 ‘가즈아’라는 감탄사는 신조어가 될 정도였고, 급기야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서도 통용되기 시작했다. 다만 비트코인의 상승세는 이어지지 않았다. 2017년 말 정점을 찍은 이후 등락을 반복하다 2018년 말에는 3000달러대까지 추락했고, 지난해 중순에서야 1만달러를 다시 돌파했다. 미국 달러화나 금을 밀어내고 새로운 시대의 화폐가 될 것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투자자들의 기대와는 동떨어졌다.

비트코인의 최근 급등은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대안 자산으로 부상한 덕분이다. 국가 간의 교역이 중단되고 소비가 줄면서 각국은 천문학적인 돈을 풀고 있는데, 이 때문에 화폐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나타나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를 가상화폐로 헤지(hedge·위험 회피)하려고 한다. 특히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며 투자자들은 달러화의 독보적인 지위를 의심하고 있고, 비트코인이 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17년만 해도 지속 가능하지 않은 자산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대다수였지만, 최근에는 비트코인을 대하는 투자자의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디지털 친화적인 기업들이 비트코인을 새로운 화폐로 받아들인 것도 암호화폐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다. 글로벌 온라인 결제 기업인 페이팔은 11월 12일(이하 현지시각) 가상화폐 거래·결제 서비스를 시작했다. 3억5000만 명의 페이팔 이용자들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비트코인캐시, 라이트코인 등의 가상화폐로 전 세계 2600만 페이팔 가맹점에서 결제할 수 있다. 가상화폐 시장에서만 거래되고 실제 화폐처럼 사용하기엔 제한이 많았던 암호화폐를 실생활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트코인에 베팅하는 기업들도 잇따르고 있다. 지급결제 업체 스퀘어는 보유 현금 중 1%인 5000만달러(약 550억원)를 비트코인에 투자하기로 했다. 비즈니스 빅데이터 업체인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자산의 80%를 비트코인에 투자했는데 현재까지 수익이 1억달러 정도로, 지난 3년간 영업이익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델리티와 JP모건 등도 잇따라 디지털 자산 서비스를 출시했다.


글로벌 온라인 결제 기업 페이팔은 11월 12일(현지시각) 가상화폐 거래·결제 서비스를 시작했다.
글로벌 온라인 결제 기업 페이팔은 11월 12일(현지시각) 가상화폐 거래·결제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7년과 달라진 환경

가상화폐 투자 환경이 2017년과 달라진 점도 투자자들의 관심을 끄는 요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월 23일 “2017년만 하더라도 가상화폐를 매매할 수 있는 거래소가 많지 않았고, 실물경제에서 차지하는 암호화폐의 가치도 크지 않았다”며 “성장동력은 사그라지고, 신규 투자자는 사라졌으며, 산업은 긴축과 해고의 ‘파도’를 탔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지금은 미국 국세청과 증권거래위원회 같은 연방기관들이 암호화폐와 관련한 규정을 만들며 규제가 훨씬 명확해졌고, CME그룹이나 인터콘티넨털익스체인지(ICE),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처럼 가상화폐를 매매하는 서비스도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스퀘어가 운영하며 2018년부터 비트코인 매매를 시작한 캐시앱의 경우 올해 3분기에만 16억달러(약 1조7700억원)의 비트코인이 거래됐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5억5500만달러)보다 세 배가량 증가한 수준이다.

미국 시티은행은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최근 낸 보고서에서 “비트코인은 21세기의 금(21st Century Gold)”이라고 표현하며 “내년 말 31만8000달러(약 3억5000만원)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1970년대 닉슨 행정부가 달러화의 금태환 중단을 선언하자 50여 년 동안 온스당 20~35달러였던 금값이 80달러로 뛰었던 시기와 유사한 장세라고 봤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도 비트코인에 뛰어들고 있다. WSJ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의 억만장자인 폴 튜더 존스(Paul Tudor Jones) 튜더인베스트먼트 설립자와 헤지펀드 매니저인 스탠리 드러켄밀러(Stanley Druckenmiller)가 비트코인에 투자했고, 자산 증식을 목표로 하는 투자자들은 이들의 행보에 영향을 받고 있다. 드러켄밀러는 CNBC와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을 금과 비슷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비트코인은 다른 자산과 비교해 규모가 작기 때문에 변동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제이 방가(Ajay Banga) 마스터카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0월 열린 ‘포천’의 글로벌 포럼에서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너무 크다. 사람들이 금융 시스템을 두려워하게 한다”며 “비트코인보다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더 선호한다”고 밝혔다. 그는 “비트코인과 같이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는 포용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미디어 회사 더블록의 래리 서막(Larry Cermak) 리서치 담당은 “암호화폐는 매우 유동적인데다 기관 투자자의 접근성이 훨씬 높다”며 “현재로서는 안전하지 않은 매우 위험한 투자일 수 있다”고 말했다. 주식이나 채권시장과 비교해 여전히 불투명하고 규제 강도가 약할뿐더러 시장 조작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점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영국 투자 회사 AJ 벨의 러스 모울드(Russ Mould) 투자 책임자는 “비트코인 채굴·사용 비용과 스마트폰을 통한 결제 용이성 등을 고려해보면 비트코인이 화폐로 사용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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