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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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인생은 60대부터’라는 말을 증명하는 배우 윤여정, 유튜버 박막례·밀라논나가 있다면, 미국엔 메이 머스크(Maye Musk)가 있다.

올해 74세(미국 나이)인 메이는 북미·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서 20대부터 영양사와 모델로 활동하다 60세에 가까운 나이에 ‘흰 머리’ 모델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67세에 버진아메리카항공 모델로 발탁되고, 69세에 메이크업 브랜드 ‘커버걸’의 최고령 모델이 됐다. 그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아들보다 내가 먼저 유명했다”고 말하곤 한다.

5월 16일 발행된 세계적인 스포츠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모델이 된 메이 머스크. 메이 머스크 트위터
5월 16일 발행된 세계적인 스포츠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모델이 된 메이 머스크. 사진 메이 머스크 트위터

메이는 지난 5월 오렌지색과 베이지색이 절묘하게 섞인 수영복을 입은 당당한 모습으로 유명 스포츠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를 장식해 화제를 모았다. 메이는 이 표지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하면서 ‘74세는 매우 좋아(#It’sGreatToBe74)’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조선비즈는 6월 13일 ‘글로벌 우먼 리더십 포럼’ 참석차 방한한 메이 머스크를 서울 강남구 WWD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났다. 패션모델 출신답게 훤칠한 몸을 휘감은 검은 정장에 백발의 커트 머리, 시원한 미소를 보는 순간 눈앞의 여성에게 ‘누군가의 어머니’ 같은 보조적인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이 첫 방한이라는 메이는 “이번 포럼에 참석하기로 한 것도 사실 한국에 오고 싶어서였다”고 농담하면서 “서울을 탐험하고 이곳의 사람들과 만날 일이 기대된다. 이번 포럼에 참석하는 여성들과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착한 날 점심, 저녁에 한정식 코스 요리를 먹었다며 “평소에 적게 먹으려고 노력하지만, 정말 맛있어서 다 비웠다”고 말했다.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하는 메이의 삶에 전 세계 젊은 세대가 주목하고 영감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덜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는 “젊은 사람은 ‘맙소사, 내가 스물한 살이나 먹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니 끔찍하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며 “하지만 난 일흔네 살이고 성공하지 않았나”라고도 했다. 


메이 머스크는 한국에 도착한 6월 12일 트위터에 “서울에 테슬라 차가 많네요”라고 쓰면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메이 머스크 트위터
메이 머스크는 한국에 도착한 6월 12일 트위터에 “서울에 테슬라 차가 많네요”라고 쓰면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사진 메이 머스크 트위터

“SNS에 당신이 얼마나 멋진지 알려라”

아들 못지않은 SNS 헤비 유저(중독성이 높은 사람)인 그는 거의 매일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린다. 트위터 팔로어 수 75만 명, 인스타그램은 60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 메이는 6월 12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트위터에 도로를 달리는 테슬라 자동차 사진을 올리고 “서울에 테슬라가 많네요”라고 쓴 뒤 테슬라와 일론 머스크(Elon Musk)를 태그했다.

그는 SNS가 삶의 기회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메이는 “페이스북을 시작한 덕에 67세에 뉴욕 패션 런웨이에 설 수 있었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에이전시(기획사)도 얻을 수 있었다”며 “모든 것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고, 이를 통해 일을 할 수도 있다. SNS에서는 무료 광고가 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만난 한국 여성들은 모두 ‘사랑스러웠다(lovely)’고 말하면서 “한국 여성은 다소 이기적으로 되더라도 삶에 있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계속 나아가야 한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SNS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당신이 얼마나 멋진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


“어두운 상황 놓이면 계획 세워 빠져나와라”

일론뿐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요식업으로 성공한 둘째 아들 킴벌 머스크(Kimbal Musk)와 로맨스 영화 제작자로 활약 중인 토스카 머스크(Tosca Musk) 등 세 아이를 키워내고 본인의 커리어도 탄탄히 쌓은 그에게도 지옥 같았던 시기가 있었다.

메이는 지난해 한국어로 출간된 에세이집 ‘메이 머스크: 여자는 계획을 세운다’에서 20대에 결혼한 뒤 남편에게 맞아 생긴 멍 때문에 모델 일을 포기해야 했으며 ‘지루하고 멍청하고 못생겼다’는 험담에 시달렸다고 썼다. 

그는 신체적·물리적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 3년 3개월 만에 아이 셋을 출산했다. 아이를 낳은 후에도 남편의 폭력이 계속됐다. 책에서 메이는 “두 살과 네 살이던 토스카와 킴벌이 구석에서 울고 다섯 살 일론이 남편의 뒷무릎을 치며 말리던 장면이 떠오른다”고 썼다. 

메이는 이혼을 사실상 금지한 남아공 법률이 완화되자마자 남편의 협박을 무릅쓰고 이혼했다. 이혼 후 아들 셋을 키우기 위해 캐나다의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면서 모델, 영양사로 일했다. 그는 “떠나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면 이후 일어날 모든 일에 압도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첫걸음을 먼저 계획하고 다음 계획을 세우면 된다”고 했다.

메이는 “어두운 상황에 처음 놓이게 되면 당신을 모욕하는 사람들로 인해 자신감을 잃고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하지만 천천히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희망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계획을 세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다만 주변에 지나치게 거듭해서 불평하지는 말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게 내버려 둬라”

세 자녀를 성공적으로 키워낸 비결에 대해선 “조언하기보다, 스스로 길을 찾아가게 뒀다”고 했다. 일하는 부모로서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기 일을 돕도록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책임감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자신도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라며 여덟 살부터 일을 도왔다고 한다.

메이는 “아이들 모두 내가 일하던 캐나다 대학에서 의학 관련 공부를 했다면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었지만 셋 다 자기 갈 길을 가겠다고 했다”며 “각자 대출, 장학금으로 학비를 마련했고 나는 신청 서류를 구경도 못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흥미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격려하고 지지해줬다.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보였던 일론 머스크가 열두 살이 된 1983년, 당시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구하기 힘들었던 컴퓨터를 사줬다. 그러자 일론 머스크는 ‘블래스타’라는 게임을 개발했다. 이 게임이 세계적인 기업가 일론 머스크의 첫걸음이 됐다.

메이는 이번 방한에서 ‘한국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입고 싶다’고 스타일리스트 팀에 요청했다. 이날 인터뷰 때 입고 온 검은 정장도 국내 브랜드 ‘로드앤테일러’ 제품이었다. 로드앤테일러는 2010년 스타일리스트 출신 김민경 대표가 창업한 슈트 전문 업체다. 메이는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라며 “한국이 스타일 좋기로 유명하기도 하고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힘들었을 디자이너들을 지원하고도 싶었다”고 말했다.

이현승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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