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영 전 T.G.I.프라이데이스 바텐더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유종영
전 T.G.I.프라이데이스 바텐더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영화 ‘소공녀’ 주인공 미소(이솜)의 삶의 우선순위는 하루치 예산을 적은 가계장부에 담겨 있다. 일당 +4만5000원, 밥 -1만원, 세금 -5000원, 약값 -1만원, 월세 -1만원, 위스키 -1만2000원, 담배 -4000원. 하루 벌어 6000원의 적자를 내는 삶에서, 미소는 집을 먼저 포기한다. 약까지 끊더라도 미소가 끝까지 가계장부에 남겨두는 두 가지는 위스키와 담배다. 두 가지가 건네는 낭만적 휴식을 삶의 필수재로 간직하는 것이다.

“저도 미소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바텐더를 하다 보면 사회적으로 당연시하는 것들을 포기하게 되거든요. 가족도 못 챙기고, 친구도 없습니다. 낮과 밤, 평일과 휴일이 뒤바뀐 채로 대부분의 세상 사람과 다르게 생활하면 상실감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나의 장부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20년째 이 직업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미소가 글렌피딕 15년산 한 잔을 마시고자, 꼬깃꼬깃한 현금 1만2000원을 들고 매일 밤 찾던 바. 현실 속에선 서울 사직동 경복궁역 인근 골목길에 자리 잡고 있다. ‘코블러’라 불린다. 이곳 주인장 유종영(44·예명 로빈) 코블러앤컴퍼니 대표를 9월 12일 인터뷰했다. 업과 낭만을 모두 지키는 바텐더에게 바의 경영철학을 들었다.

유 대표는 1999년부터 T.G.I. 프라이데이스(T.G.I.)에서 일한 한국의 2세대 바텐더다. 1세대 바텐더는 1950년대 미군 부대에서 태동했다. 1992년 T.G.I. 국내 입점 이후 그곳의 바 문화가 대중화했다. 당시 일하던 사람들이 2세대 바텐더로 명맥을 이어 나갔다.


어떻게 바텐더가 됐나.
“가업인 호텔 경영을 포기하고 부산에서 상경했다. 당시 호텔 바에서 실습 삼아 관리직을 맡았지만 외로움과 낯섦, 쓸쓸함을 느꼈던 것 같다. 자산 증식이 목표인 외삼촌과 도전주의적인 나의 생활신조가 엇갈렸다. 그곳에서 나는 무인도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와도 같았다. 나의 예명인 로빈이 탄생한 배경이다. 서울에 먼저 왔던 친구가 T.G.I.에서 요즘엔 줄을 서서 밥을 먹는다고 알려줬다. 마침 그곳에서 신입 바텐더를 뽑았다.”

20년간 ‘바’를 지켜왔다. 바는 어떤 공간인가.
“시기마다 바에 대한 나의 관념이 바뀐다. T.G.I.에서 만났던 사부가 출근하면 1년 동안 같은 질문을 던졌다. ‘야, 바는 뭐냐? 바텐더는 뭐라고 생각해?’ 내 답에 대한 사부의 반응은 (시니컬하게) ‘그러냐?’가 전부였다. 출근하면 사부가 나에게 질문 던지고, 퇴근하면 내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바가 사람들이 마음의 병을 얻으면 오는 곳이라 생각했다. 처음 보는 바텐더에게도 말을 던져놓고 갈 수 있는 공간이니까. 최근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쉼표’다. 문장에서 쉼표가 딱 찍히는 순간은 앞 문장과 뒤 문장이 대개 반전이 일어나는 경우다. 힘든 일상에 지쳐도 바에 들렀다가 나가면서 활기찬 기분을 얻었으면 좋겠다.”

바텐더 역할이 중요하겠다.
“그래서 바텐더는 직업관이 확실해야 한다. 자기만의 사정이 있어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무대에 오르는 배우처럼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직원을 뽑을 때도 인성을 많이 고려하겠다.
“엄청 많이 본다. 처음 직원을 교육할 때 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네가 생각하는 바는 어떤 곳이니?’를 먼저 묻는다. 사실 명확한 정답은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음료 제조업을 넘어 손님에게 만족감을 선사하는 서비스업이기 때문이다. 음료를 제조하는 멋들어진 이미지만 보고 바텐더로 뛰어든 사람은 힘이 들겠지.”

어떤 의미인가.
“바에 가면 음료 제조대가 항상 바 테이블보다 아래에 있어 안 보인다. 온갖 궂은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진다. 백조가 호수 위에 우아하게 떠 있어도 물밑에선 다리를 거칠게 휘젓는 것과 같다. 하루 100~150명 정도의 손님을 마주하는데 각자 요구하는 서비스가 모두 다르다. 우리 가게에 메뉴가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술은 얼마나 마셨는지, 식사는 하고 왔는지, 주량은 얼마나 센지, 누구랑 왔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데이터를 한 번에 다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
“일하던 초창기, 주스 드링크가 유행하던 시기에 만난 여성 손님. 섹스온더비치를 주문했는데 입맛에 맞지 않는다더라. 아홉 번을 다시 만들어줬더니 마침내 만족했다(마지막 잔은 사실 첫 번째 잔과 같은 레시피로 만들었다). 그렇게 악연인 줄만 알았던 고객이 포털 사이트 프리챌에 내 팬카페를 개설하고 나를 입소문 내준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는 바의 규칙에 반기를 드는 손님에게는 때론 엄격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유 대표는 이를 ‘자존심’으로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자존심과는 다르다. 나를 위한 자존심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내는 어떤 것들에 대한 자존심이다. 그걸 우리가 지키지 못하면 바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지켜내야 하는 것이 뭔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의미한다. 음료를 만들고 손님을 대하는 규칙, 내가 중시하는 가치 같은 것들이다.”

그에게 자존심은 직원을 지켜내는 발로다. “개업 당시 인상 깊게 읽은 책 ‘세팅 더 테이블’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경영에서 손님·투자자·사장·협력업체·직원, 다섯 가지 이해 관계자가 있다면 누가 가장 중요할까? 보통 손님이라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직원이라고.”

왜 직원인가.
“만약 대표의 우선순위가 매출을 올려주는 손님 위주로 돌아간다면, 직원은 구석에서 일만 해야 한다. 직원이 지칠 수밖에 없다. 직원이 즐겁지 않은 곳에선 그 어떤 손님도 즐거울 수 없다.”

어떤 실천을 하려고 하나.
“직원들에게 약속한 날보다 이틀 전에 무조건 월급을 준 것이다. 영업 종료 후엔 무조건 밥을 먹인다. 2012년부터는 1년 경력 이상의 직원과 연초에 바 문화가 선진화한 국가로 3박 4일간 연수를 간다. 친목·배움·휴식 모두를 해결하는 일종의 투자다. 지난해 1000만원을 들여 세 명이 일본에 다녀왔다. 매년 그 돈을 모은다.”

바텐더로서 삶의 목표는.
“라디오에서 ‘한 직종에서 40년을 일하고 나니 그제야 일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겨우 20년이다. 삶의 장기 목표가 70세에 ‘은퇴’하는 것이다. 마지막 손님에게 어떤 음료를 만들어줄지 항상 고민한다.”

마지막 한 사람을 정해야겠다.
“지금은 있다. 2007년부터 우리 가게에 나보다 많이 오는 카이스트 출신 과외 선생이다. 이분과 맛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게에 대한 진솔한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유 대표는 그의 인생을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에 비유했다. “위스키를 베이스로 쓰면 어떤 술을 섞어도 본연의 무겁고 두꺼운 맛이 난다. 나의 목표도 뚜렷하고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바텐더 이외에 다른 일을 한 번도 시작해본 적이 없다. 다만 이 안에서 작은 시도를 한다. 마치 위스키에 여러 술을 섞어 칵테일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의 작은 시도는 무엇인가.
“11월 연희동 2층 주택에 ‘코블러 연희’라는 바를 낸다. 2층은 직원들을 위한 연구실로 꾸밀 예정이다. 중기 목표는 법인 확장이다. 바 문화가 활발한 나라의 경우 법인이 바 경영뿐만 아니라 주류 판매·수입·컨설팅도 담당한다. 나도 첫걸음으로 통영에 진 디스틸러리(증류소)를 만들려고 한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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