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10월 11일 미국과 중국은 무역 협상 1단계 합의를 끝냈다. 이 때문에 양국의 무역 전쟁이 휴전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기대감도 커졌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세계 경제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싸움이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관세 전쟁이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싸움, 4차 산업 패권이 달린 인공지능(AI)·통신·인터넷 분야에서의 싸움, 금융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화폐 싸움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 정부와 의회는 최근 연방공무원퇴직금(TSP)의 중국 투자 금지 법안을 발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TSP는 대표적인 공적 연금이다. 10월 28일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초당적 모임을 만들어 이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안이 현실화하면 타격을 입는 중국 기업은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텐센트, 세계 최대 CCTV 업체 하이크비전 등이다. 필자는 양국 갈등이 무역·환율을 넘어 금융 분야로까지 확대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폴라 수바키(Paola Subacchi)영국 퀸메리대 경제학 교수, 영국 왕립국제관계연구소 연구부장, 볼로냐대학 경제학 교수
폴라 수바키(Paola Subacchi)
영국 퀸메리대 경제학 교수, 영국 왕립국제관계연구소 연구부장, 볼로냐대학 경제학 교수

최근 미국과 중국이 발표한 무역 전쟁 ① ‘1단계 합의’는 1년 넘게 끌어오던 양국 간 무역 싸움을 종식시킬 포괄적 협정의 첫 관문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이 합의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동안의 적대적인 대(對)중국 정책을 포기할 것으로 예상한다면 오산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중국과 또 다른 전쟁, 즉 금융 전쟁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고도로 통합된 세계 경제 시스템에서 무역과 금융은 동전의 양면처럼 얽혀있다. 국경을 초월한 무역 거래는 잘 작동하는 국제 결제 시스템, 신용을 발행할 용의와 능력이 있는 금융 기관 간 강력한 네트워크에 의존한다. 그리고 이 금융 인프라는 미국 달러화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달러화가 가장 현금성, 교환성 높은 통화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 지위는 미국이 지금의 ‘특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미국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적은 비용으로 돈을 인쇄했고, 이를 세계 각국의 제품과 서비스를 사는 데 썼다. 특히 세계 자본 시장 개방으로 미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이를 두고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텡 전(前) 프랑스 대통령은 재무장관이던 1960년대 “미국이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을 누린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실제로 세계 무역 거래의 80% 정도는 달러화로 표시된 송장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 대부분의 국제 거래도 최종적으로는 미국 금융 시스템을 통해 처리된다. 매일 약 1600만 건의 결제가 은행 간 통신 플랫폼인 유로-아메리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를 통해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자본 흐름을 제한하는 미국 정부의 조치는 그 어떤 무역 장벽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정부는 이런 조치를 매우 손쉽게 결정할 수 있다. 대통령이 ②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을 발동하기만 하면 된다. 1977년 발효된 IEEPA에 따르면, 미 대통령은 ‘미국 안보·외교·경제에 현저한 위협이 될 경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 비상사태를 선포하면 대통령은 대상이 되는 국가와 관련한 금융 거래 금지, 자산 동결 등을 명령할 수 있다.

역대 미 대통령은 과거부터 IEEPA를 각종 경제 제재 조치에 법적 근거로 활용해왔다. 실제로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 법안을 발효해 쿠데타로 실권을 잡은 파나마의 마누엘 노리에가 군부를 견제하는 데 활용했다. 당시 미 정부는 IEEPA를 발동하고 파나마와 연결된 모든 펀드를 뉴욕연방은행 계좌로 옮겨 파나마 관련 모든 금융 거래와 관련 경제 활동을 막았다.

트럼프 역시 지금까지 수차례 IEEPA를 언급했다. 그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 ‘비상 사태’를 부르짖을 준비가 돼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멕시코가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를 막지 않으면 멕시코 수입품에 관세를 매기겠다고 엄포하는가 하면, 미국 기업에도 “즉각 중국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문을 서슴지 않는다.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견제할 때에도 IEEPA를 활용했다. 그는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해 올해 초 국영 에너지 회사인 페데베사(PDVSA)의 자산을 동결했다. 또 미국 정부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소유한 부채를 매입하거나 정부가 지분을 소유한 기업 주식을 거래하는 것도 ③ 금지했다. 동시에 트럼프는 후안 과이도 임시 정부에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관리하던 베네수엘라 동결 자산에 대한 접근권도 넘겼다.

트럼프가 이런 식의 제재를 발동한 횟수는 전임자와 비교해 적은 편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창의적인 방식을 고안해냈다. 미국의 불균형한 재정수지를 활용해 무역 상대국을 공격하는 등의 방법으로 상대국이 최대의 피해를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특히 이런 조치는 제삼국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실제로 러시아는 자산 동결, 거래 제한뿐만 아니라 미국 은행 시스템에 대한 접근 제한, 조달 계약 배제 등의 문제에 직면해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 경제는 이미 수출 감소, 투자 부진, 소비 위축, 성장 둔화 등으로 고전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 밖에도 중국을 대상으로 한 미국 포트폴리오 흐름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연방공무원퇴직금(TSP·Thrift Saving Plan)의 대중국 투자 제한,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 상장 폐지, 미국 기업이 관리하는 주식시장 지수에 대한 중국 기업의 접근 제한 등이 거론된다.

실제로 이 정책이 실행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실행될지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물론 쉬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트럼프는 뚜렷한 전략이 없다고 해서 자신의 계획을 중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특히 지정학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경제적 지렛대를 이용하는 방식을 쓸 때는 더욱더 그렇다.

이런 식의 접근법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거듭되고 있는 ‘달러화의 무기화’는 달러화 자산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정부 뜻에 따라 상장 폐지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외국 기업이 과연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할까. 지정학적 교전으로 자산이 동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기업이 과연 미국 은행에 자산을 맡길 수 있을까.

미국에 대한 불신이 고조될수록 중국이 지난 10년간 주장해 온 국제 통화 개혁 추진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국제 시장에서 유로화 등 다른 통화의 역할이 확장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 과정에 중국 뜻이 많이 반영되면 위안화 역할도 커질 것이다. 또 석유나 원자재 수출국의 수요에 따라 새로운 대체 통화 시스템까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는 경제 이익과 국가 안보 간의 관계를 확대해 세계 양대 경제 대국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경쟁 패권주의자가 주도하는 양극화 세계 질서 출현 등을 부추기고 있다. 그의 움직임은 수십 년간 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무역과 금융 시스템을 해체하는 것을 넘어 엄청난 갈등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Tip

10월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류허 중국 부총리와 백악관에서 만나 “예비적 무역 협정(preliminary trade deal)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구두로 맺어진 이 합의는 미국이 10월 15일부터 관세율을 인상(25→30%)하려던 계획을 보류하고, 중국이 400억~5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을 수입하기로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협상단은 11월 칠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합의문을 완성할 예정이지만, 이 자리에서 서명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3월 미 의회가 공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1977년 이후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이 선포한 국가비상사태는 총 54건이며, 이 중 29건은 지금도 효력이 발휘되고 있다. 1979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이란 주재 미 대사관에 미국인이 억류됐을 때 처음 이 법안을 발동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상황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반미 성향 독재자이자 차베스의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를 축출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베네수엘라 임시 정부 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를 지지하고 있다. 미국이 마두로 정권을 견제하는 것은 ‘먼로독트린’과 ‘원유 시장 주도권’ 두 가지를 원인으로 들 수 있다. 먼로독트린은 유럽 등 외부 세력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입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자는 미국의 외교 방침이다. 또 미국은 남미 최대 원유 생산국 베네수엘라가 러시아와 밀착하는 것을 견제하고 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 국영 에너지 회사인 페데베사(PDVSA)는 미국 내 자회사 시트고의 지분 절반을 러시아에 넘겼는데, 이 부분이 트럼프의 심기를 자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폴라 수바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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