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여진 연세대 경영학,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연세대 경영학,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뜨겁게 달아오르던 국내외 증시가 최근 조정을 받았다. 특히 미국 주식시장의 상승 동력이 크게 휘청였다. 정부는 물론 중앙은행과 실물경기도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 확산하던 지난 3월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쏟아내며 시장의 투자 심리를 부추겼다. 그러나 11월 대통령 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온 현 상황에서는 추가 재정 정책 추진이 불확실해졌다. 미국 연방정부 지출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역시 7월 이후로는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적극적으로 공급하지 않고 있다. 8월 말 잭슨홀 미팅에서도 연준의 장기 통화 정책 목표가 시장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 실망한 증시는 흔들렸다. 5~8월 강한 회복세를 보였던 경제지표도 9월 이후부터는 지지부진한 성적을 내놓고 있다.

미 증시 조정은 가장 큰 ‘버블’로 지목돼온 애플과 테슬라부터 건드렸다. 두 회사 주가는 9월에만 10% 넘는 하락세를 나타냈다. 물론 특수한 이벤트가 있긴 했다. 애플은 7월과 8월에 액면 분할을 실시했고, 테슬라는 8월 유상증자 이후 S&P 500 편입이 불발됐다. 모두 기업 펀더멘털(기초체력)과는 무관한 수급 관련 이슈다. 어쨌든 증시 조정 시기에 발생해 급락의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만약 글로벌 증시를 견인해온 주요 기술주가 다시 살아난다면 최근 급락은 ‘단순 조정’ 정도로 해석될 것이다. 하지만 하락세가 앞으로도 지속한다면, 버블 붕괴의 시작으로 여겨질 수 있어 관찰을 게을리할 수 없다. 글로벌 증시를 견인해온 주요 기술주의 급락을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붕괴와 엮으려는 시도가 벌써 눈에 띈다.

그러나 2020년의 주식시장은 수익률, 이익 추이, 밸류에이션, 정부 정책 등 여러 관점에서 닷컴 버블 때와는 큰 차이점이 있다.

우선 산업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산업 패러다임이 언택트(비대면) 이코노미로 일컬어지는 디지털 산업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전 세계 많은 이가 비용과 시간 절감, 효율성 향상 등 언택트 이코노미의 장점을 체감했다. 언젠가 코로나19가 종식하더라도 경제·사회 전반의 비대면 추세는 이어질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그리고 그것은 주식시장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닷컴 버블에서 살아남은 미국 아마존과 한국의 네이버·카카오 같은 회사만 보더라도 닷컴 버블 당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기술력과 비즈니스 모델, 수익성을 갖추고 있다. 구글·아마존과 같은 혁신 기업이 미국 증시의 주도주로 자리매김한 것도 디지털 산업의 펀더멘털을 과거와 달리 봐야 하는 이유다.

국내 대형 종목도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기회 삼아 비로소 미래 지향적인 혁신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IBM의 차세대 중앙처리장치(CPU)를 위탁생산(파운드리)하며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를 추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는 신흥국 시장을 공략하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기업 수준에서 벗어나 모빌리티 혁신 기업으로 재탄생 중이다. LG화학은 이차 전지의 글로벌 탑티어 기업으로, 이마트는 온라인 커머스 최고 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또 닷컴 버블 때는 각국의 통화 긴축 정책 기조가 버블 붕괴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러나 현재의 코로나19 사태 추이를 고려할 때 글로벌 주요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이 긴축으로 선회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 중앙은행에서 푼 막대한 유동성이 경기 둔화를 방어하고 있어서다. 유동성을 회수할 만큼 경기 둔화가 완화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며, 더욱이 일각에서는 독감 유행 시기가 다가오며 코로나19 확산세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미국 10년 국채금리와 물가를 고려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라는 사실도 닷컴 버블 당시와는 크게 다르다. 2000년 3월 닷컴 버블 붕괴 직전에 미국 정부는 1999년부터 2000년 초반까지 정책금리를 4.75%에서 6.5%까지 올렸다. 미 대선의 영향으로 추가 재정 정책 규모와 시기가 불확실하기는 하나, 결국 추진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도 희망을 품게 한다.

2000년대 초반과 달리 글로벌 경제가 미국 경제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되지 않고, 중국 경제도 글로벌 경제의 한 축으로 작용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물론 미·중 갈등은 앞으로도 글로벌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중국 경제가 혁신 산업으로의 전환에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글로벌 증시에서는 중요한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부동산 규제 심화와 저금리 고착화로 개인과 가계 자금의 국내 증시 유입은 중장기 추세로 발전할 수 있다.
부동산 규제 심화와 저금리 고착화로 개인과 가계 자금의 국내 증시 유입은 중장기 추세로 발전할 수 있다.

쏠림 현상은 조심해야

‘버블은 터지고 나서야 버블인지 아는 것 아니겠냐’는 말이 있을 만큼 현재 증시가 버블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버블 논란에도 글로벌 유동성이 주가 상승을 꾸준히 이끌어왔다는 건 중요한 사실이다. 또한 코로나19와 관련된 유망 종목도 계속 증가하며 투자자에게는 좋은 투자 대안이 되고 있다.

최근 증시 흐름을 볼 때 투자자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공매도 제한 조치가 연장된 가운데 개인의 수급 영향력이 너무 커져 쏠림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가가 기업의 펀더멘털보다는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데, 인위적인 쏠림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부동산 규제 심화와 저금리 고착화로 개인과 가계 자금의 국내 증시 유입은 중장기 추세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동학개미가 보여준 올해의 이례적인 성공은 학습효과까지 더해져 앞으로도 증시에서 중요한 수급 요인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시장의 단기 부침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절실한 시기다. 기회는 계속 찾아올 것이다. 지금은 2000년이 아닌, 2020년이니까.

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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