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62는 잠시 대타를 담당할 목적으로 탄생했으나 그럭저럭 무난한 성능이 호평을 받으면서 당당히 소련의 주력 전차 위치를 차지했고 해외에도 대량 판매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T-62는 잠시 대타를 담당할 목적으로 탄생했으나 그럭저럭 무난한 성능이 호평을 받으면서 당당히 소련의 주력 전차 위치를 차지했고 해외에도 대량 판매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1945년 드디어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렸다. 초유의 지옥을 경험한 인류는 앞으로 비극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희망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나치를 상대로 함께 싸웠던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새로운 대결이 시작된 것이었다. 바로 냉전이었다. 강대국 간의 직접 충돌이 없었다뿐이지 경쟁의 강도는 오히려 더 컸다.

당시 국방 담당자들은 소총부터 핵무기까지 무조건 상대보다 강력한 것을 보유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지상전의 왕자 노릇을 담당한 전차도 마찬가지였다. 만일 유럽에서 전쟁이 재발한다면 전차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은 확실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최강의 기갑부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소련은 계속해서 해당 전력의 우위를 유지하고자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음에도 전력 감축에 나서지 않고 1946년부터 양산하기 시작한 T-54는 그러한 의지의 산물이었다. T-54는 등장 당시 기준으로 이에 맞설 수 있는 서방의 전차는 없었다. 놀란 미국이 1951년 M47을 개량한 M48을 대항마로 내세웠지만, 곧바로 소련은 T-54를 개량한 T-55로 대응했다. 그 정도로 소련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는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했다. 미국이나 소련 모두 자신이 상대를 앞서고 있다고 선전했고, 설령 실제로 그렇더라도 보수적인 국방 관련 실무자들은 일단 상대가 나보다 강하다고 전제하고 정책을 짰다. 따라서 상대의 무기 개발 동향을 입수하면 실제로 성능이 어떨지는 차치하고 대응책부터 마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연히 미국도 T-55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M60 개발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이처럼 양국이 상대의 움직임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 전차를 조금씩 개량하는 방식으로 후속 전차를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시나 냉전처럼 대립이 심각하면 앞당겨질 수 있지만, 사실 전차는 개발하는 데 보통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무기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이 배치한 T-44, T-54, T-55는 외형만으로 알 수 있듯이 예외 없이 전작을 기반으로 한 개량형이다. 미국이 대항마로 내세운 M46, M47, M48, M60도 마찬가지여서 흔히 ‘패튼(Patton) 시리즈’라고 통칭할 정도다. 이런 장군 멍군식 대응은 신속히 후속작을 내놓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전력의 우위를 확고히 잡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소련은 1960년대 중반 배치를 목표로 이미 1957년부터 제430 계획으로 명명된 신예 전차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후 T-64로 명명된 제430 계획은 한마디로 지금까지 존재했던 것들과 차원이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의 전차였다. 아직 개발하지도 않은 주포 발사용 대전차미사일, 복합장갑, 대용량의 디젤엔진이 장착될 예정이었다.

T-64가 예정대로 배치된다면 미국이 한창 개발 중인 M60을 손쉽게 제압하는 것은 물론 1980년대까지 향후 20년 이상 전력 우위를 담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전혀 달랐다. 목표 성능을 구현하는 데 당시 기술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었다. 차일피일 개발이 지체되면서 목표로 한 1960년대에 T-64의 배치는 불가능해 보였다.


개발 당시에 T-64가 목표로 했던 성능은 이전 전차와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정작 이를 구현하는 데 애를 먹었고 결국 개발이 지연되어 주인공의 자리를 T-62와 이후 등장한 T-72에 빼앗겼다. 사진 위키피디아
개발 당시에 T-64가 목표로 했던 성능은 이전 전차와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정작 이를 구현하는 데 애를 먹었고 결국 개발이 지연되어 주인공의 자리를 T-62와 이후 등장한 T-72에 빼앗겼다. 사진 위키피디아

필요할 때 등장해야

조만간 미국이 M60을 배치할 것으로 예상되자 T-64가 개발될 때까지 발생하는 전력 공백을 메울 목적으로 군부는 예전에 폐기한 제140 계획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T-55를 기반으로 화력과 주행력을 향상하는 안이었는데, 주포를 올리는 문제만 해결하면 그다지 장애물은 없었다. 이에 제166 계획이라는 새로운 사업명으로 사업이 시작됐다.

강력한 115㎜ U-5TS 활강포를 장착하는 데 애를 먹었지만, 일단 1961년부터 T-62라는 이름으로 배치를 시작하고 동시에 개량에 나섰다. 전시에나 사용하는 개발 방법을 선택했을 만큼 소련은 다급했다. 그런데 T-64의 배치가 이루어질 때까지만 대타를 담당할 것이라는 애초 계획과 달리 T-62는 당당히 주력 전차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일선에서 T-62가 예상외의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문제점을 해결한 T-64는 1970년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갔으나 그때는 T-62의 개량형으로 T-64와 성능이 맞먹는 T-72의 배치를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결국 소련은 1980년대까지 이 세 전차를 모두 주력으로 운용하게 됐다. 당연히 효율적이지 못했다.

새로운 기술은 시대를 선도한다. 하지만 T-64처럼 이상이 너무 커서 꼭 필요할 때 실현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반면 대타였던 T-62의 성능이 당시 등장한 경쟁 전차보다 앞서지는 않았음에도 필요할 때 등장했기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비단 무기뿐만 아니라 상업 제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아도 제때 등장하지 못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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