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베릭 클럽하우스 바로 앞에 있는 18번 홀 그린 전경. 오른쪽 작은 건물이 스타트 하우스다. 바로 바닷가에 있어 맑은 날에도 바람이 강할 때가 많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노스베릭 클럽하우스 바로 앞에 있는 18번 홀 그린 전경. 오른쪽 작은 건물이 스타트 하우스다. 바로 바닷가에 있어 맑은 날에도 바람이 강할 때가 많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노스베릭 골프클럽(North Berwick Golf Club)은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에서 동쪽으로 약 30㎞ 떨어진 해안가 작은 마을인 노스베릭에 있다. 마을 중심부 도로를 승용차로 달리다 골프클럽 안내 표지판을 보고 좁은 골목길로 좌회전하니 갑자기 드넓은 해변에 링크스 코스가 펼쳐졌다. 영국 소설의 주인공 해리포터가 9와 4분의 3번 승강장 개찰구를 통해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가는 기차를 타는 곳으로 순간이동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곳은 19세기부터 휴양지로 유명했다. 코스를 따라 이어지는 고운 모래해변이 있고 바다에는 5개의 크고 작은 섬이 운치를 더한다.

코스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왼쪽부터 피드라(Fidra),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 램(Lamb)과 사우스 도그(South dog), 크레이그 리스(Craig leith), 배스 록(Bass Rock)이 자리 잡고 있다. 하얀색 화강암 섬인 배스 록에는 15만 마리 이상의 새가 산다. 노스베릭 어느 곳에서나 잘 보이는 제주 산방산과 꼭 닮은 산도 하나 보인다. ‘노스베릭 로’라는 곳으로 산방산처럼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졌다. 로(law)는 스코틀랜드어로 주변보다 높은 언덕을 말한다. 해발 187m이지만 어디서나 잘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17세기부터 노스베릭 해안에서 골프를 즐겼다고 한다. 노스베릭에 골프클럽이 결성된 건 1832년이다. 전 세계에서 13번째로 오래된 클럽이다. 현재의 클럽하우스는 1880년에 건립된 것이다.

이 골프장은 초창기 세기의 빅매치가 벌어진 혈전의 무대였다. 골프의 발상지를 놓고 지금까지도 자존심 경쟁이 이어지는 세인트앤드루스와 머셀버러 지역 간 골프 대결이 많았다. 한쪽에서 경기가 벌어지면 홈 텃세가 지나치다 못해 공정성 시비로 인한 법적 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실제로 톰 모리스(1821~1908)와 윌리 파크 시니어(1833~1903)가 1870년 머셀버러에서 대결을 펼칠 때는 관중의 노골적인 방해 때문에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원정 온 모리스가 경기 도중 시합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져 나중에 법정까지 간 끝에 경기가 무효 처리된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 중립 지역인 노스베릭에서 양 세력의 빅매치가 이어졌다.

그중 1875년 9월 벌어진 톰 모리스 부자(父子)와 윌리 파크-멍고 파크 형제의 팀 매치는 골프 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연을 남겼다. 이름이 같은 톰 모리스 부자는 골프계에서 아버지는 올드 톰, 아들은 영 톰으로 부른다. 당시 천재 골퍼로 명성이 자자하던 아들 영 톰 모리스(1851~75)가 이 대결 후 3개월 만에 24세 나이로 요절했다.

당시 ‘올드 톰’과 윌리 파크 시니어는 라이벌이었다. 초창기 디 오픈에서 둘은 번갈아 가며 우승을 나눠 가졌다. 1874년 노스베릭에서 벌어진 일대일 대결에서 올드 톰이 윌리 파크 시니어에게 지자 1875년 모리스 부자와 파크 형제의 2 대 2 매치가 벌어졌다.

36홀 결투였는데 2홀을 남기고 있을 때까지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 한 통의 다급한 전보가 도착했다. 아버지인 올드 톰이 받아 보니 “마거릿(영 톰의 아내)이 출산 중 위중하니 최대한 빨리 돌아오라”는 내용이었다. 둘은 1년 전 결혼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전보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 영 톰이 35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아 둘은 1홀 차로 이겼다. 부자는 서둘러 배를 타고 세인트앤드루스의 집으로 향했지만, 집에 도착했을 때 마거릿과 아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실의에 빠진 영 톰은 술만 마셨다. 그해 12월 영 톰은 눈보라 치는 매서운 날씨 속에 6일 동안 12라운드 마라톤 매치를 벌였다. 잉글랜드 출신 아마추어인 아서 몰스워스의 도전을 받자 몸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가 10홀 차로 이겼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아침, 아버지가 아들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었다. 사인은 폐출혈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죽음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영 톰은 1868년 17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디 오픈 정상에 오른 뒤 1872년까지 4연패(1871년에는 열리지 않음)를 했던 골프계 최초의 슈퍼 스타였다. 동시에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잃은 슬픔에 죽음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비운의 사내였다.


노스베릭 2번 홀 그린에서 클럽하우스 쪽으로 바라본 모습. 멀리 가운데 봉긋 솟아있는 게 제주 산방산을 닮은 ‘노스베릭 로’다. 우리로 치면 오름이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노스베릭 2번 홀 그린에서 클럽하우스 쪽으로 바라본 모습. 멀리 가운데 봉긋 솟아있는 게 제주 산방산을 닮은 ‘노스베릭 로’다. 우리로 치면 오름이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1880년 건립된 노스베릭의 클럽하우스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안에는 클럽 초창기부터 사용됐던 다양한 트로피와 역대 캡틴들의 사진이 빠짐 없이 전시돼 있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1880년 건립된 노스베릭의 클럽하우스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안에는 클럽 초창기부터 사용됐던 다양한 트로피와 역대 캡틴들의 사진이 빠짐 없이 전시돼 있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1899년 해리 바든(1870~1937)과 윌리 파크 주니어(1864~1924)의 대결도 유명하다. 당시 1만 명의 골프 팬들이 노스베릭에 몰려들었다. 이들을 위해 특별 열차까지 편성됐다. 홈 앤드 어웨이로 36홀씩 72홀 매치였는데 해리 바든은 윌리 파크 주니어의 홈 코스인 머셀버러는 텃세가 심해 정상적인 경기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1차전이 노스베릭에서 열려 바든이 2홀 차로 앞섰다. 이어 2주 후 자신의 홈코스인 갠턴에서 열린 36홀 매치에서도 승세를 이어 간 바든이 72홀 합계 11홀 차 대승을 거뒀다.

회원제이긴 하지만 노스베릭 골프클럽은 폐쇄적이지 않고 이웃집 사랑방처럼 친근한 느낌을 준다. 1번과 18번 홀 페어웨이로 난 샛길로 주민들이 수시로 해변을 드나든다.

클럽하우스 안내를 맡은 중년 여성 셜리는 “이곳은 여성들이 골프를 즐기는 모습을 친숙하게 볼 수 있는 데다 매년 전 세계에서 1만1000여 명의 골퍼들이 방문하는 열린 골프장”이라고 했다. 회원을 위한 식당이 있는 2층 한쪽에서는 여성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노스베릭에는 1888년부터 이미 레이디스 클럽이 있었다. 세계 최초의 여성 클럽인 ‘더 레이디스 클럽 오브 세인트앤드루스(1867년)’가 생긴 지 21년 만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여자 골프 대항전인 2019년 솔하임컵에서 유럽 팀 단장을 맡은 카트리오나 매슈도 노스베릭 골프클럽의 명예 회원이다.

클럽하우스 옆에는 클럽과 볼 제작자이자 코스 디자이너 그리고 프로골퍼였던 벤 세이어스(1856~1924) 나무 조각상이 서 있다. 리스 출신의 그는 노스베릭에 와서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키가 160㎝밖에 되지 않았지만 매우 강인한 골퍼였다. 그가 1873년 설립한 클럽 회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클럽 메이커로,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해안을 따라 이어진 코스는 8 자 형태로 교차한다.

클럽하우스에서 가장 먼 9번 홀 그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다. 아웃과 인코스의 구분이 명확하다. 비교적 평범한 1번 홀을 지나면 2번 홀부터가 진짜 싸움이다. 거친 러프와 굴곡진 페어웨이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 그린은 작고 살짝 솟아 있어 공략이 만만치 않다. 거친 바람과 러프에 고전하던 골퍼들은 18번 홀 티잉 구역에 섰을 때 비로소 집에 돌아온 것처럼 평온을 되찾고 위안을 얻는다. 페어웨이는 매끈하고, 널찍한 그린은 평탄하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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