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가수 현진영, 노이즈, 룰라, 클론의 음반 재킷. 사진 을유문화사
왼쪽부터 가수 현진영, 노이즈, 룰라, 클론의 음반 재킷. 사진 을유문화사

인터넷과 아이돌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음악은 아지트와 동네에서 발현했다. 그 재능을 알리기 위해서는 알아보는 사람들 앞에 나서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아지트가 몰려 있는 동네를 우리는 ‘신(scene)’이라 부른다. 그렇기에 팝계에서는 하나의 장르나 사운드 스타일에 지역명을 붙이는 게 익숙한 일이었다. 힙합의 탄생지인 캘리포니아주 캄튼, 그런지 혁명의 근원지인 시애틀, 브릿팝의 주요 지역인 맨체스터, 아예 지역 이름이 하나의 장르가 된 시부야케이 사운드도 있다. 한국은? 아마 인디 음악의 중심지인 홍대 앞 정도밖에 없다. 물론 1970년대 ‘쎄씨봉’으로 흔히 알려진, 포크 가수들의 활동 무대 명동이 있고 1980년대 신촌블루스와 들국화를 배출한 신촌이 있지만 딱히 그들을 지역의 음악, 즉 하나의 ‘신’으로 인식하는 건 아니다. 방송국이 음악을 알리는 가장 막강한 힘을 가져왔던 역사 때문일 수도 있다. 

책 ‘한국 팝의 고고학’에는 방배동 카페 골목 등 1980~90년대내용이 담겼다. 을유문화사
책 ‘한국 팝의 고고학’에는 방배동 카페 골목 등 1980~90년대내용이 담겼다. 사진 을유문화사

하지만 인식의 바깥에 신은 존재했다. 한국 음악의 역사 또한 그 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명동과 신촌 이외에도 1990년대 댄스 가수들의 산실인 이태원이 있었고, 시나위와 부활이 사람들을 모았던 종로3가 낙원상가에 있던 파고다극장이 있었다. 건국 초기 음악인들의 배양소는 용산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미군 클럽이었다. 다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그 지역들이 조망받지 못했을 뿐이다. 1990년대까지 한국 대중음악을 지역으로 나누고 조망하는 역작이 나왔다.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다. 

이 책은 애초 2005년에 출간됐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한국 음악 연대기를 두 권에 두툼하게 담아냈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음악책이 잘 팔린 적은 없다. 게다가 당시에도 ‘옛날’인 1960년대와 1970년대 이야기였으니. 그래도 아는 사람들은 알았다. 옛날 신문과 잡지를 뒤지고 근황조차 알 수 없던 이들의 증언을 모아 한국 대중음악의 초창기 역사를 집대성한 작업은 전무후무했다는 것을. 미적, 역사적 평가는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사실을 바탕으로 쓴 한국 대중음악의 ‘사기(史記)’가 등장했다는 것을. 아주 잘 팔리는 책은 아니었지만 일단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이사할 때 버리곤 하는 책 리스트에서 이 책만큼은 제외시켰다. 1970년대 중반 태생인 김학선도 그가 체험한 1990년대의 이야기를 함께 썼다. 어느 순간부터 이후의 이야기,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기록을 기다리게 됐다. 10년 전쯤 이 책의 중심 저자인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를 만났을 때, ‘한국 팝의 고고학’ 다음 편은 안 나오냐고 물었지만 그럴싸한 답은 듣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사이 1980년대는 물론이고 1990년대조차 명백한 과거의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추억의 대상, 즉 고고학적 연구 소재가 된 것이다. 

초판이 나온 지 17년, 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신현준과 최지선이 과거가 된 시간을 다시 고고학적으로 발굴했다. 1970년대 태생인 김학선도 1990년대의 이야기를 함께 썼다. 절판된 2005년 판본도 다시 다듬었다. ‘한국 팝의 고고학’은 그렇게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총 네 권으로 다시 출간됐다. 

20세기 후반의 한국 대중음악이 스타와 명반보다는 ‘신’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특히 ‘욕망의 장소’라는 부제를 단 1980년대의 서울이 지역 단위로 촘촘하게 나뉜다. 조용필 신화의 중심지였던 여의도 방송가, ‘비 내리는 영동교’의 배경이 된 강남(당시 영동)의 성인문화와 산업화의 음악, 1980년대 급격히 성장하고 확장한 신촌, 민중가요와 대중음악의 교배지였던 대학로, 카페 골목으로 명성을 떨친 방배동, 한국 클럽 문화의 발원지인 이태원처럼 굵직굵직한 지역은 물론이고 무교동과 강동구, 서대문과 이촌동 같은 미시적 지역까지 현미경과 돋보기를 들이댄다. 

1960~70년대에 걸쳐 태어난 2차 베이비붐 세대가 10대, 20대를 맞이했던, 즉 대중문화 생산과 소비의 주역이 된 시기이자 신군부의 사교육 금지 정책으로 청소년들에게 가장 많은 자유 시간이 주어졌던 시기였으며 3저 호황에 힘입은 경제 성장의 시대였다. 많은 것이 금지됐지만 음지의 욕망은 어떻게든 금지된 것들을 절실히 맛보게 했던 때이기도 했다. 그러니 욕망의 도시, 서울의 이곳저곳에서 새로운 문화와 음악이 꿈틀댈 수 있었으리라. 

‘한국 팝의 고고학’은 서울에서 스타가 되고 청년 문화의 아이콘이 된 이름들을 거론한다. 조용필과 나훈아, 주현미와 윤수일, 이문세-이영훈, 송골매, 이치현과 벗님들, 조동진, 어떤날, 해바라기, 빛과 소금, 김광석과 동물원, 시나위와 백두산…. 1980년대 ‘가요톱텐’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뿐만 아니라 ‘별이 빛나는 밤에’와 ‘밤과 음악사이’를 통해 익숙했던 이름들의 성장사와 뒷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1980년대의 일간지에는 연예 기사가 양적으로 많지 않고 질적으로도 미비”하다는 서문의 내용처럼, 연예 주간지와 월간지에 주로 의존하되 관계자들의 증언을 채집하여 그동안 어둠 속에 묻혀있던 시대와 장소와 사람들을 조망한 저자들의 노고가 새삼 놀랍다. 그 이전 시대(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는 여러 논문 및 연구로 어느 정도의 계보가 확립됐다. 그 이후 시대(1990년대부터)는 과거는 과거이되 인터넷에 많은 흔적이 남아있다. 반면 1980년대는 등대의 불빛이 닿지 않은 바다와 같다.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상상과 우상’이라는 철학 서적 같은 부제를 단 1990년대 편도 기본적으로는 지리적 구분을 따라간다. 압구정동과 강남, 홍대 앞이 주된 배경이지만 그 속살은 좀 더 은밀하고 풍성하다. ‘신세대’의 등장으로 그 이전과 완전히 달랐던 시대, 서울의 상권 또한 어느 정도 정립됐던 시기다. 여기에 유입되고 등장한 유흥과 놀이가 1990년대 대중음악의 뿌리가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1990년대 편에서는 그간의 평론에서 소외됐던 영역, 즉 나이트클럽과 DJ 문화에서 파생된 댄스 음악 혁명이 흥미를 끈다. 김건모와 클론, 신승훈을 배출한 라인기획 김창환의 인맥도와 그 주변의 이야기를 이렇게 심도 깊게 다룬 시도는 이 책이 처음일 것이다. 또한 룰라와 DJ DOC 같은 1990년대 중반 댄스 음악에 대해 산업적, 문화적으로 분석한 시도 또한 당대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기존의 ‘엘리트 대학생이나 록 마니아가 향유하던 언더그라운드’라는 1980~90년대의 신화는 붕괴한다. 그 자리에 드러나는 것은 그 시대 한국 사회 전반에 흘렀던 청년 문화의 모세혈관이다. 각 지역을 오가며 새로운 욕망을 대변했고, 마침내 라디오와 소극장, TV까지 퍼졌던 새로운 음악들이다. 이제는 과거가 된 그 모든 것은 애초에 늘 새로운 것으로서 존재했다. 2020년대에 짚어낸 20세기 후반의 익숙한 이름들이 새로운 맥락으로 우리에게 왔다. ‘한국 팝의 고고학’의 가장 큰 미덕이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기획 및 자문위원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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