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시우(PGA투어 3승), 임성재(2승), 이경훈(2승), 김주형(1승). 사진 PGA투어
왼쪽부터 김시우(PGA투어 3승), 임성재(2승), 이경훈(2승), 김주형(1승). 사진 PGA투어

9월 23일(이하 현지시각)부터 26일까지 나흘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 할로 클럽에서 열렸던 미국과 세계연합 팀의 남자 골프 대항전인 2022 프레지던츠컵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1994년 대회가 출범한 이래 미국은 최근 9연승을 포함해 통산 12승 1무 1패라는 일방적인 성적표를 남겼다.

이번 프레지던츠컵도 결과만 보면 맥없이 끝난 경기라고 할 수 있지만, 현지 미디어는 세계연합 팀의 선전을 이끈 한국 선수들 ‘코리안 브라더스’에 주목했다. 미국의 골프 전문 매체 ‘골프다이제스트’는 “한국 선수들의 엄청난 공헌 덕분에 세계연합 팀이 미국에 맞설 수 있었다”며 “김주형(20), 임성재(24), 김시우(27), 이경훈(31) 등 한국의 젊은 골퍼 네 명이 앞으로 미국에 일방적인 프레지던츠컵의 향방을 바꿀 것”이라고 한국 선수들을 콕 집어 찬사를 보냈다. 프레지던츠컵은 양 팀 12명씩 선수가 출전하는데 세계연합 팀은 한국 선수가 그 3분의 1을 차지했다.

김시우는 이번 대회 3승 1패로 세계연합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다. 김시우는 마지막 날 싱글 매치플레이에서 세계연합 팀 첫 번째 주자로 나서 난공불락 같던 미국의 ‘까치발 장타자’ 저스틴 토머스를 상대로 마지막 홀 버디를 거두며 1홀 차 승리를 거뒀다. 임성재는 2승 1무 2패를 기록했다. 세 경기에 나선 이경훈은 2승 1패를 올렸다. 김주형은 2승 3패로 승점 2점을 기록했다. 현지 언론은 “이번 대회 최고의 선수는 양 팀 통틀어 대회에 엄청난 에너지를 불어 넣어준 톰 킴(김주형의 영어 이름)이었다”는 찬사를 쏟아냈다. 세계연합 팀은 대회 첫날 포섬(2인 1조로 하나의 공을 번갈아 치는 방식) 다섯 경기와 이틀째 포볼(2인 1조로 각자 경기를 하고 더 나은 성적을 팀 성적으로 삼는 방식) 다섯 경기에서 각각 1승 4패로 중간 합계 2 대 8까지 몰렸다. 프레지던츠컵은 매치에서 이기면 1점, 비기면 0.5점을 준다. 하지만 대회 사흘째 김주형이 오전 포섬 경기에선 이경훈과 오후 포볼 경기에선 김시우와 팀을 이뤄 2승을 거두며 분위기를 바꾸었다. 미국의 막강 듀오 패트릭 캔틀레이, 잰더 쇼플리와 벌인 포볼 경기에서 김주형은 마지막 홀 버디로 승리를 확정 짓고는 타이거 우즈처럼 격정적으로 모자를 집어 던지고 어퍼컷 세리머니를 펼쳐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역대 가장 많은 네 명이 출전한 한국 선수는 세계연합 팀이 따낸 12.5점 가운데 7.5점을 합작했다. 순수하게 한국 선수들이 따낸 점수만 따져도 5점이나 됐다. 싱글 매치플레이 3점과 한국 선수들로만 짝을 이룬 포섬 한 경기와 포볼 한 경기를 더한 결과다.

이 같은 코리안 브라더스의 활약에 이들을 오랫동안 후원해온 CJ그룹도 환호하고 있다. 임성재, 김주형, 이경훈, 김시우 네 명 모두 CJ그룹의 CJ대한통운이 후원사다. 한국 같은 경제 규모에서 이렇게 단일 브랜드가 남자 골프 스타 선수를 모두 후원하는 건 보기 드문 현상이다. 2019년 프레지던츠컵에도 임성재, 안병훈 등 CJ그룹 후원 선수가 출전했었다. 이런 현상은 CJ그룹이 한국의 골프 마케팅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시우(오른쪽)가 9월 25일(현지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 할로 클럽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 마지막 날 싱글 매치에서 미국의 저스틴 토머스와 경기가 끝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김시우(오른쪽)가 9월 25일(현지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 할로 클럽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 마지막 날 싱글 매치에서 미국의 저스틴 토머스와 경기가 끝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CJ그룹는 2000년대 접어들며 당시 일부 계층의 스포츠라고만 여겨지던 골프에서 글로벌 무대에 진출할 젊은 선수를 후원하고 세계 대회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먼저 여자 골프에 주목했다. 박세리가 1998년 US오픈 정상에 오르며 한국 여자 골프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지만, 아직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의 한계가 뚜렷하던 시절이었다. CJ는 2001년부터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큰 이선화, 배경은 등 정상급 여자 선수를 후원하기 시작했고, 2002년부터 국내 최초의 공식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대회인 ‘CJ 나인브릿지 클래식’을 4년간 열었다. 한국 선수들이 국내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함께 경쟁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우승한 국내 선수가 LPGA투어 직행 티켓을 따내며 ‘신데렐라’가 됐다. CJ그룹이 2003년부터 후원한 박세리는 2007년 아시아인 최초이자 역대 최연소로 LPGA ‘명예의 전당 회원’이 돼 한국 여자 골프의 위상을 높였다. 2010년대 한국 여자 골프가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자 CJ그룹은 여자 골프에서 손을 떼고 불모지였던 남자 골퍼 육성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남자 선수들을 본격적으로 후원하기 시작했고 2017년부터는 국내 최초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정규 대회인 ‘CJ컵’을 열었다.

여자 골프의 발전 모델을 남자 골프에 적용한 것이다. CJ대한통운이 후원을 시작한 2016년 이후 PGA투어 대회에서 우승한 한국 선수는 임성재, 김시우, 강성훈, 이경훈, 김주형 등 다섯 명으로, 9승을 합작했다. 9월 26일 발표된 세계골프랭킹(OWGR) 100위권 한국 선수인 임성재(19위), 김주형(22위), 이경훈(42위), 김시우(76위) 모두 CJ대한통운 소속 선수다.

CJ대한통운은 이번 대회와 소속 선수들의 활약을 통해 전 세계 36개국 249개 거점에서 비즈니스를 펼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고 글로벌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국내를 넘어 베트남, 인도 등 신흥국과 물류 시장의 중심인 미국에서도 현지 법인 ‘CJ Logistics America’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프레지던츠컵에서 화려한 결실을 보여준 CJ그룹의 스포츠 마케팅에는 이재현 회장이 추구하는 ‘온리 원(ONLY ONE)’ 경영 철학이 깔려 있다고 그룹 관계자는 설명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야구, 농구 등 인기 스포츠에 투자하는 동안 CJ그룹은 골프라는 ‘차별화(differentiated)’된 영역에서 선수는 물론 해당 종목의 성장을 이끄는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최초(first)’와 ‘최고(best)’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CJ그룹의 온리 원 전략이 먼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분야가 문화·예술 분야다. CJ그룹은 1995년 드림웍스 2대 주주로 영화 사업을 시작해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로 작품성과 흥행을 동시에 추구하며 한국 영화에 새바람을 불어넣었고, 2020년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 최초의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네 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2012년 대규모 한류 컨벤션과 콘서트를 결합한 케이콘(KCON)은 미국, 일본, 중남미, 유럽, 오세아니아 등으로 뻗어나갔다. 1999년 ‘엠넷 영상 음악 대상’에서 출발한 MAMA는 2006년 ‘Mnet KM Music Festival’, 2009년 ‘Mnet Asian Music Awards’로 몸집을 불려 나가 지금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 시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CJ 골프 마케팅의 뿌리에는 이런 문화·예술 부문의 성과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CJ그룹의 골프 마케팅은 유망주를 발굴해 세계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종목과 관련 산업까지 함께 성장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며 “문화·예술 분야에서 거둔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전략적인 마케팅을 장기적으로 펼치기 때문에 기존 스포츠 마케팅의 틀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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