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과 헌신의 아이콘 이영표(42). 그를 사회적 기업 ‘삭스 업’의 대표이자 컴패션 한국 홍보대사 자격으로 만났다.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성실과 헌신의 아이콘 이영표(42). 그를 사회적 기업 ‘삭스 업’의 대표이자 컴패션 한국 홍보대사 자격으로 만났다.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스타트업이 줄기차게 모여드는 곳. 선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회 혁신가의 성지, 성수동의 소셜 벤처 빌딩에서 이영표 대표를 만났다. 스타트업 기업 ‘삭스 업(Socks up)’의 대표이자, 컴패션 한국 홍보대사로서의 만남이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 임팩트스퀘어와 같이하고 있어요. 함께하는 멤버 5명은 좋은 회사를 나와서 연봉도 깎고 동참했어요(웃음).” 좌우 균형이 반듯한, 특유의 미키마우스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가 말했다. 베이지색 점퍼를 입고 노트북을 켜놓은 모습이 영락없는 소셜 벤처 사업가였다.

대체 그가 말하는 사회적 가치라는 게 뭘까? 현란한 드리블로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고 돌진하던 사나이는 인정받던 KBS 축구 해설위원까지 그만두고, 왜 이 일에 매달리고 있는 걸까?


무슨 일을 하나.
“풋웨어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사회적 기업과 유사한 형태인데 풋크림, 양말 등 발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한다.”

왜 하필 발인가.
“시작은 발이 아니라 양말이었다. 축구 하다 넘어지면 일어나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양말을 잡아 올린다. 프리킥 할 때도 양말부터 당긴다. 그걸 ‘삭스 업’이라고 한다. 도전에 앞서 자신을 추스르는 루틴 같은 것. 그런데 축구장에서만 그런가? 우리 삶에서도 ‘삭스 업’이 필요하다. 사실 대전제는 하나였다. ‘남을 돕자. 넘어진 사람을 ‘삭스 업’ 시키자.’ 지속해서 도우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남의 돈 기부받아서 하는 건 지속성이 떨어지고, 그럼 사업을 하자, 어떤 사업?… ‘옳지, 양말!’ 이렇게 된 거다.”

양말 장사, 쉽지는 않을 텐데.
“몸에 지닌 것을 헤아려 보면 모자, 바지, 장갑, 속옷, 신발…, 양말이 제일 싸다. 세상의 기준으로 양말은 하찮은 물건이다. 양말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열등감 들겠나. 그런데 우리도 알고 보면 다 바탕에 열등감 투성이다.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 나보다 더 잘사는 사람 보면 한없이 작아진다. 쓸모없고 부족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하찮아 보이는 이 양말에 의미를 넣기로 했다.”

‘초롱이'라는 별명처럼 안 그래도 반짝이는 이영표의 눈이, ‘양말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더 초롱초롱 빛났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삭스 업 모멘트 프로젝트’는 셀리브리티를 인터뷰해서 그들의 메시지를 양말에 새겨넣는 작업. 이영표가 자랑스럽게 보여준 힙합 프로듀서 ‘코드쿤스트’의 양말은 깨알 같은 글씨가 양말목까지 빼곡했다.

양말에 적힌 글씨는 뭔가.
“지금은 ‘쇼미더머니’ ‘고등 래퍼’ 등으로 유명한 코드쿤스트의 편지다. 무명일 때 그는 정말 간절히 원했다. 힘 있는 사람이 내 노래를 한 번만 들어줄 기회가 있다면…, 그래서 애타는 마음으로 미국의 유명 래퍼인 조이 베데스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당연히 안 열어봤을 테지. 거기서 끝내지 않고 그의 운전기사,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주변 인물의 이메일로 계속 편지를 보낸 거다. 어느 날 우연히 편지를 읽은 매니저가 그의 음악을 베데스에게 들려줬고, 베데스는 코드쿤스트를 당장 LA로 초청했다. 기회가 열렸고, 코드쿤스트는 유명 아티스트가 됐다. 이 양말에 쓰인 글이 바로 베데스에게 쓴 코드쿤스트의 편지다.”

‘나한테 기회를 달라’는 메시지군. 그 메시지는 양말을 타고 또 어디로 흘러갔나.
“이 양말을 산 사람 중에서 힙합 프로듀서를 꿈꾸는 50명을 초청해서, 원데이 클래스를 열었다. 코드쿤스트는 자기가 받은 기회를 그들에게 원 없이 흘려보냈다. 돈 없을 때 기계는 뭘 사면 좋은지, 영감이 막히면 어떻게 하는지, 실수는 어떻게 음악적 소스가 되는지…, 세세한 음악적 노하우를 나눴다.”

기회는 청년들에게 더욱 간절하다.
“맞다. 여길 보라. (노트북에서 한 소년을 보여주며)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서 130㎞ 떨어진 곳에 사는 ‘샤킬레’라는 17세 소년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축구공을 끼고 살았다. 한국 축구팀 테스트를 받아보는 게 이 아이 꿈이었다. 삭스 업이 작년에 이 친구를 초대해서 그 기회를 줬다. 아쉽게도 불합격했지만, 기회의 의미를 더 알게 됐다. 샤킬레는 자기 실력을 객관적으로 알게 됐고, 무엇보다 억울함이 사라졌다고 하더라. 자기도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건 남에게 기회를 주는 삶을 살겠다며 돌아갔다.”

이영표는 2019년부터 컴패션 한국 홍보대사도 맡고 있다. 컴패션은 1952년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한국의 전쟁 고아를 돕기 위해 시작한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 10만 명 이상의 한국 어린이가 도움을 받았다. 지금은 전 세계 180만 명이 각국 컴패션 후원자의 일대일 후원(한 달에 4만5000원)으로 양육되고 있다. 그는 현재 브라질을 비롯한 빈곤국의 여섯 가정을 후원 중이며 그의 세 딸도 각자의 명절 용돈을 모아 또래 아이 3명을 후원하고 있다.


공을 패스하듯 우리도 자기가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야 한다고 믿는 이영표.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공을 패스하듯 우리도 자기가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야 한다고 믿는 이영표.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기버(giver)와 테이커(taker)라는 말이 있다. 늘 퍼주는 사람과 영악하게 받기만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애덤 그랜트가 쓴 ‘기브 앤 테이크’를 보면, 신기하게도 성공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결국 기버다. 선수 시절, 당신은 왼쪽 윙백에서 항상 결정적인 골을 차도록 공을 ‘주는’ 사람이었다. 골문 옆에 선 ‘기버’의 운명이 때론 억울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나.
“초등학교 4학년부터 축구를 했다. 공을 차면서 내가 발견한 건 주인공이 되고 싶은 내 욕심이었다. 기회가 오면 내가 골을 넣고 싶다! 팬들은 골 넣는 선수를 좋아하니까. 그런데 감독은 다르다. 감독은 팀에 헌신하는 선수를 좋아한다. 11명이 경기할 때 결정적인 역할은 2~3명이면 충분하다. 나머지 8명은 헌신해야 한다. 능력자 1~2명이 있는 팀은 한 경기 정도는 이긴다. 그런데 시즌 전체 우승컵을 가져가는 팀은 헌신하는 선수가 많은 팀이다. 헌신하는 사람이 없으면, 절대 못 이긴다. 나는 거기서 오는 기쁨이 크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카메라는 골을 넣는 선수를 화려하게 비추는데.
“카메라도 관심도 박수도 다 스트라이커가 받지만, 벤치에 오면 공기가 달라진다. 감독은 공을 어시스트한 선수에게 달려가 감사를 표한다. 처음엔 그게 안 보이더라. 그런데 어느새 나도 그러더라. 전반전 끝나면 헌신한 친구에게 달려가 ‘너, 정말 열심히 했어!’라는 격려가 절로 나왔다. 골 넣는 사람은 한두 명으로 정해져 있다. 그들은 자기 위치에서 결정적 기회를 기다린다. 그런데 헌신의 역할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헌신의 기회는 모두에게 있다.”

늘 헌신의 기회를 노리는 선량한 기회주의자. 지금은 손흥민의 토트넘이지만, 한때 이영표의 토트넘이던 시절이 있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그는 토트넘의 왼쪽 윙백을 책임졌다. 최근 한 방송 채널에서 영국을 찾아가 11년 전의 이 선수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들 기억 속의 이영표는 놀라웠다.

“그는 온종일 뛸 수 있는 선수 같았다.” “항상 달리고 공격하는 선수였다.” “믿을 만하고 꾸준하며 탄탄한 사람이었다.” “100% 헌신해서 보기에 즐거운 축구를 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보다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실력으로 보면 나는 참 애매했다. 실력이 부족하면 선택권이 많지 않아서, 나는 ‘열심히’를 선택했다. 그런데 그 잘하던 사람들이 중간에 많이 포기했다. 나는 포기를 안 해서 거기까지 갔다.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솔직히 당신은 자신을 ‘테이커’라고 느끼나. ‘기버’라고 느끼나.
“내 바탕은 테이커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는 받기만 했다. 부모님의 사랑, 친구, 이웃, 형제, 스승이 없었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태어나는 순간 내가 버려졌다면, 사람들이 나를 다 외면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겠지. 그 모든 걸 다 대가 없이 받았다. 크게 빚을 진 거다.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테이커다. 그런데 내가 가진 모든 게 다른 사람에게서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 줄 수 있다.”

이어령 선생도 말씀하셨듯, 그래서 삶 자체가 기프트인 거겠지.
“그런데 나는 철저하게 받아놓고, 매 순간 더 받으려고 하더라. 예를 들어 국가대표가 되니 아침저녁으로 5성급 호텔에서 뷔페를 먹었다. 처음엔 황홀했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 그 좋은 음식이 질리더라. 음식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변한 거다. 감사를 잃어버리기가 얼마나 쉬운가. 그 누구도 자기가 받은 것보다 더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재벌도 태어날 때 허벅지에 통장을 차고 나오지 않았지 않나. 똑같이 호흡 하나 갖고 온 거다. 생각해보니 물질도 지혜도 건강도, 경험이나 지식조차도 혼자 얻은 것이 아니라 다 받은 것이었다.”

인생의 전반전을 큰 기복 없는 성실한 축구 선수로 산 소감이 어떤가.
“(생각에 잠겨) 어릴 때는 축구가 재밌었다. 내가 찬 공이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게 신기했다. 공으로 상대의 중심을 이동시키고, 상대를 제치며 드리블하는 것도 신이 났다. 그래서 축구를 즐기고 좋아했다. 프로의 세계는 달랐다. 즐기라고 돈을 준 게 아니라, 이기라고 돈을 준 거니까(웃음). 하지만 경기에서 이기는 건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 이겨도 내일 지는 게 축구였다. 다만 팀에서 매일 밥 먹고 얼굴 보는 20~30명 동료 사이에서는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인간은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역할이 커지면 교만해지고, 소외당하면 내가 한없이 하찮게 느껴진다. 선수 생활은 그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중심을 잡으려던 삶이었다. 마음의 기복을 거치면서 나를 지키는 법을 꽤 배웠고(웃음).”

공은 당신 인생에 무엇이었나.
“공을 갖고 있으면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공을 패스하면 관심도 넘어간다. 공을 독점하면 내가 승리하는 것 같지만 결국 다 죽더라. 축구는 결국 패스다. 패스만 잘하면 골 넣을 확률이 커진다. 축구뿐 아니라 사회도 마찬가지다. 작은 욕심으로 머뭇거리지 말고, 줄기차게 나한테 온 이익을, 기회를 나눠야 건강해진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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