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상대역이었던 차인표와 결혼해 한 아이를 낳고 두 아이를 입양한 배우 신애라(52). 그는 자신의 양육 철학에 대해 “과잉보다는 결핍이 낫다”고 했다.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1994년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상대역이었던 차인표와 결혼해 한 아이를 낳고 두 아이를 입양한 배우 신애라(52). 그는 자신의 양육 철학에 대해 “과잉보다는 결핍이 낫다”고 했다.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1994년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백화점 판매원 ‘진주’로 등장해 백화점 소유주인 재벌 남자와 사랑에 빠졌던 신애라. 꽉 끼는 유니폼을 입고 로비를 종종거리던 여자와 집게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트럼펫을 불던 여피족의 사랑은, 소비 시대의 밝은 분위기를 타고 대중의 환상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트렌디 드라마가 낳은 이 낭만적인 커플은 순식간에 전 국민의 부러움을 받는 TV 시대의 마스코트가 됐다. ‘국민 스타’였던 차인표는 미국 영주권자 신분을 버리고 씩씩하게 입영 영장을 받았다. 신애라는 사파리 점퍼에 검은 모자를 쓰고, 군대 가는 차인표를 배웅했다. 남자는 거짓 없이 믿음직스러웠고 여자는 다부지고 현명했다. 군 복무 휴가 중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의 사랑은 판타지 동화의 한 장면이었으나, 이후 두 사람의 삶은 땀에 젖은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졌다. 누가 누구를 더 큰 곳으로 이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선 굵은 삶은 일반인의 예측을 벗어났다.

작품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차인표는 종종 가뭄과 지진으로 고통받는 제3세계 어딘가에 있었고, 신애라는 아프리카 극빈국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들의 카메라에 잡힌 차인표의 눈은 밝게 이글거렸고 신애라의 눈은 물빛으로 촉촉했다. 그들은 한 아이를 낳고(1998년) 두 딸을 입양했고(2005·2008년) 극빈국 50명의 아이를 양육 후원하고 있다.

지난 2014년 미국에 가서 교육과 상담학을 공부하던 신애라가 5년 반 만에 돌아왔다. 7년 만의 드라마 복귀를 앞두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신애라에게 만남을 청했다. 개나리색 스웨터에 슈트를 입은 키 큰 여성이 뛰어 들어왔다. 비타민C 레모나를 눈으로 흡입하는 것 같았다.


인생의 전환점은 하나님을 믿은 것. 아이들을 키운 것. 미국에서 5년 반 동안 공부하며 반 백의 삶을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인생의 전환점은 하나님을 믿은 것. 아이들을 키운 것. 미국에서 5년 반 동안 공부하며 반 백의 삶을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세 아이를 어떤 양육 철학으로 키웠나.
“잘하는 것을 하며 남들과 더불어 사는 것, 이게 생의 전부잖나. 그래서 일단은 아이들 이야기를 공감하고 수용해주려고 했다. 부모와 관계가 좋아야 사회 나가서도 관계가 좋으니까. 그다음은, 아이의 재능을 발견해줘야 한다. 부모가 재능을 읽어주지 못하면, 아이에게 안 해도 되는 걸 무리해서 시키게 된다. 부모의 욕구가 개입되면 아이들과 관계가 나빠진다.”

큰 아이인 차정민군은 가수로 데뷔한 것으로 안다.
“그 아이는 노래를 좋아했다. 배 속에서부터 내가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하는 걸 들어서 그렇다더라(웃음). 고등학교 때 미국에 가서 그곳에서 자기 길 갈 줄 알았더니, 실용음악과에 편입했다. 유튜브로 음악 발표하고 착착 알아서 제 길 간다. ‘네 인생이다’ 존중하면서 가끔 슬쩍 몇 마디 조언해 주면, 또 은근슬쩍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하면서 따라오기도 하고. 감사한 일이다. 두 딸은 경기도의 기독교 대안학교(동탄기독학교)에 보냈다. 시설도 규모도 소박한데, 교육 철학이 잘 맞았다. 인스타·틱톡·유튜브를 못 하게 하고 독서를 많이 시킨다. 규정상 스마트폰을 못 하게 하니 애들이 심심해서, 안 치던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다(웃음).”

신애라는 청소년에게 담배와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것처럼, 스마트폰을 제한하는 정치인이 나오면 당장 뽑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마트폰 최대한 늦게 주기’ 같은 사회 운동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실리콘밸리의 최상위 리더들도 자기 자녀들에게만큼은 디지털 환경을 완벽하게 차단하더라. 그런 맥락에서 ‘아이들의 재능 찾아주기’도 그만큼 여유 있는 부모들에게 유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가기 전에 명문대 신입생들에게 강연한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원하는 전공을 찾은 사람?’ 하고 물었더니 10명도 손을 안 들었다. ‘부모가 원하는 대학에 온 사람?’ 하니 다 들더라(웃음). 4년 동안 비싼 돈 내고 공부하는데, 자기 미래와 연관을 짓지 못한다. 슬픈 현실이다. 내 부모님도 먹고사는 게 바빠서 재능을 못 찾아줬다. 감사한 건 당신들도 알아서 했으니(아버지는 서울대 작곡과, 어머니는 서울대 국어교육과 출신이다), 우리 남매를 그냥 내버려 두셨다. 공부 안 한다고 혼난 적은 없다. 거짓말하면 혼이 났지. 무엇이든 강요하신 적이 없고, 그래서 감사하게도 나는 내 길을 찾았다.”

핵심이 뭔가.
“과잉보다는 결핍이 낫다. 그러면 아이들이 어떻게든 자기 길을 찾아간다. 경계선을 크게 치고 아무 풀이나 뜯도록 놓아주면 된다. 끌고 가서 이 풀 먹으라고, 심지어 풀을 다 짓이겨 씹어주면 아이들은 일어설 힘이 없어진다. 혼자 나가서 살 수가 없다. 학습만 놓고 보면 과잉보다는 차라리 방치가 낫다.”

미국에서 교육학,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깨달아지는 게 많던가.
“히스대학교(HIS University)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이어서 가정 사역을 공부했다. 심리학은 사람을 알아가는 학문이고, 상담학은 그렇게 알게 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학문이다. 관계를 잘 맺게 해주는 공부라고 할까. 칼 로저스 이론까지 파지 않더라도, 공감과 수용을 공부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많이 스캔했다. 그동안 욕먹는 걸 싫어해서, 진솔하지 못했다. 누가 나에게 고민을 상담하면, 또박또박 옳은 소리만 했다. 공감이 부족했고 너무 부끄러웠다.”

5년 반 동안 자기반성만 하고 왔다고 했다.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또 무엇을 발견했나.
“나에게도 통제 욕구가 있더라. 좋아서 권하지만 나에게 좋은 게 남에게는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위탁 가정 교육 프로그램도 이수한 것으로 안다. 미국엔 위탁 가정이 보편적이고, 그만큼 수혜도 폐해도 많다.
“미국은 가정에서 자랄 수 없는 아이는 위탁 가정이 맡는다. 장애가 있어도 일반 가정에서 돌본다. 자격증 제도는 장점이다. 위탁 아동이 생기면 자격증 리스트에 있는 가정에서 맡는다. 1인당 600~1000달러를 받으니 5명 키우면 생활비가 나오기도 한다. 법적으로 검증한다지만, 돈 때문에 여러 문제도 생기더라. 한국 가정위탁지원센터의 프로그램 자문을 맡고 있는데, 내 생각엔 위탁 가정은 순수 봉사로 정착됐으면 싶다. 그래야 마음이 있는 사람이 이 일을 한다. 그럼 어떻게 보상하느냐? 의료, 물품, 재능, 식품 등을 지원하면 어떨까 싶다.”

신애라에겐 모든 삶의 기준이 아이들이었다.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 컴패션(Compassion)의 홍보대사로도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캄보디아, 필리핀, 브라질 등에서 50명이 넘는 아이들을 일대일 결연으로 양육했다.

한때 별명이 1980년대 스타 피비 케이츠였는데, 요즘엔 입양과 난민 보호에 앞장서는 안젤리나 졸리가 떠오른다.
“입양 때문에 그렇게 봐주시는데, 그것 말고는 졸리와 닮은 게 하나도 없다. 하하하. 예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이런 인생을 살지 않았을 거다.”

무슨 말인가.
“신이 내게 주신 달란트, 내게 맡기신 일이 이거였다. 신은 모든 인간에게 남들과 함께 살기 위한 달란트를 주신다. 나는 그게 아이들이었다. 배우는 내 적성에 맞는 좋은 직업이다. 그런데 연기라는 업으로 영향력이 생기고, 대중이 내 말에 귀 기울여주시니 아이들을 더 많이 살릴 수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성경’의 달란트는 우리가 아는 탤런트, 세속적인 재능과는 어떻게 다른가.
“달란트는 다른 사람을 위해 쓰라고 받은 거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살라고 주신 게 아니다. 그걸 땅속에 묻어두면 나중에 하나님께 ‘악하고 게으른 종아!’ 소리를 듣는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손에 달란트를 쥐고 나온다. 그걸로 자기가 살릴 대상도 정해진다. 나는 아이들이고, 어떤 분은 소수자나 싱글맘이다. 받은 재능으로 누구를 도울 수 있나. 자녀가 그 대상을 찾도록 돕는 것도 부모다. 공부는 나중에 해도 된다. 춤추는 게 좋으면 안무를, 꾸미는 게 좋으면 디자인을 공부하면 된다. 우리 막내는 동물을 좋아한다. 수의사가 되고 싶으면 공부 많이 하라고 한다(웃음). 아니면 애견카페나 동물 조련사도 좋다고. 대신 ‘조련사가 되려면 사랑이 많은 조련사가 돼라, 판매원이 되면 정직하게 잘 파는 판매원이 돼라’ 그런다.”

신애라의 에너지는 밝고 시원했다. 자기 사명을 삶으로 보여주는 부모에게 무슨 잔소리가 필요할까. 곧 시작할 tvN 드라마 ‘청춘기록’에서는 오랜만에 금수저 럭셔리 엄마 역할을 맡아, 생애 최초로 ‘연예인처럼’ 주기적으로 피부 관리도 받고 손톱에 칠도 해봤다며 환하게 웃었다.

배우 인생에서 아쉬운 것은 없나.
“내 인생 목표가 ‘최선을 다하지 말자’다(웃음). 너무 기를 쓰고 하면 나중에 ‘내가 다 했다’고 교만해질 수도 있잖나. 정도껏 열심히 하고 어느 순간 ‘됐어. 괜찮아’ 브레이크를 건다. 하하. 그렇게 생각해도 ‘연기는 좀 더 최선을 다해 볼 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닮고 싶은 배우가 있나.
“나문희 선생님처럼 자연스럽게 배우로 나이 들어가면 좋겠다 싶다. 그리고 오드리 헵번, 참 좋아한다. 자기 길을 잘 걸어간 멋진 사람이다.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지 않나. 헵번의 사진을 보면 눈이 막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부부가 성숙하게 잘 지내는 관계의 비결은 뭔가.
“다들 비슷하지 않나?(웃음). 차인표씨는 가정적이고 좋은 남편이다. 꾸준히 운동하는 것도 보기 좋다. 설거지는 자기가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안다. 올해가 결혼 25주년인데, 그 긴 세월을 함께하며 아내가 뭐 그리 계속 예뻤겠나. 그래도 끝까지 ‘예쁘다,  사랑한다’ 해주는 게 정말 고맙다. 내 생각은 이렇다. ‘지금의 내 배우자의 모습이 내 결과물이다. 내가 잘됐으면 배우자 덕이고, 배우자가 잘못되어있으면 내 탓이겠구나…’ 요즘엔 진솔해지려고 싸움을 건다. 끝까지 진솔해야 같이 살 수 있다. 싸우지 않고 묻어두면 문제가 생긴다.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려고 한다. 남은 인생이 더 기니까(웃음).”

어떤 부모로 남고 싶은가.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좋았던 부모. 많은 아이를 함께 살리는 데 노력했던 엄마. 다행히 우리 아이들도 크면 입양하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무엇에 가장 감사하게 될까.
“두 딸을 입양한 일. 혼자 누리기 아까울 만큼 정말 감사하고 말할 수 없이 좋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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