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한창 골프를 즐기던 시절 장타에 70대 타수를 쳤다고 한다. 사진 조선일보 DB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한창 골프를 즐기던 시절 장타에 70대 타수를 쳤다고 한다. 사진 조선일보 DB

1990년대와 2000년대 아시안 투어 상금왕 두 차례,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상금왕 두 차례를 차지하며 한국 남자 골프의 한 시대를 장식한 강욱순(54)은 10월 25일 세상을 떠난 고(故) 이건희(1942~2020) 삼성전자 회장을 지근 거리에서 오랜 시간 함께한 몇 안 되는 스포츠인이다.

그는 1997년 삼성과 후원 계약을 했고 2012년 떠날 때까지 15년 동안 삼성 모자를 쓰고 아시안 투어와 KPGA 투어에서 16승(개인 통산 18승)을 올렸다. 그리고 안양컨트리클럽(안양CC)의 헤드 프로로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여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가족에게 골프 레슨을 했고, 최고경영진 일부만 동행하는 하와이 가족 여행에도 두 차례나 초청받았다.

현재 ‘강욱순 아카데미 in 안산’의 대표이사이자 강욱순 골프아카데미 원장으로 활약하는 그를 만나 이건희 회장과 골프 그리고 그의 인생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골프가 변방에서 세계 최강으로 발돋움한 데는 이건희 회장의 골프 사랑도 큰 몫을 했다고 한다.

박세리가 1998년 전통과 권위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US여자오픈에서 ‘맨발 투혼’으로 우승할 때 쓰고 있던 모자에는 삼성 로고가 박혀 있었다. 삼성이 골프 유망주 발굴에 나선 건 1992년부터로 알려져 있다. “골프 산업은 10년 안에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산업이니 골프 꿈나무를 발굴하고 육성하라”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강욱순은 이렇게 회상했다. “박세리 프로젝트는 단지 스타 선수 한 명에 대한 지원이 아니었다. 박세리 외에도 김대섭과 권명호, 제다나 등 당시 중·고등학생 30여 명이 ‘아스트라 꿈나무(골프 꿈나무)’에 선정돼 체계적인 지원을 받았다. 데이비드 레드베터를 초청해 안양CC에서 함께 훈련받게 했다. 박세리는 1997년부터 미국에서 레드베터에게 레슨받도록 지원했다. 박세리는 사실 10년을 내다보았는데 1년 만에 성공한 경우다. 세리 전담팀을 만들어 국내와 해외를 모두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당시 내가 삼성에 있을 때 개인적으로 데이비드 레드베터 아카데미에 레슨을 요청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레드베터 밑에 있는 코치에게 먼저 레슨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삼성의 박세리와 아스트라 꿈나무들은 겨울이면 미국에 가서 레드베터한테 직접 레슨받더라. 난 그때 아시안 투어 상금 1위였는데도 안 됐는데. 그런 모습 보면서 부러웠고, 삼성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1997년 삼성과 정식 계약을 맺은 강욱순은 안양CC에서 이건희 회장을 처음 만났다. “처음 인사할 때 2m 앞에 딱 서서 민망할 정도로 한참을 보더니 ‘그래 열심히 해라’고 말씀을 하셨다. 관상을 보신 것 같았다. 2년 뒤 헤드 프로가 됐을 때 다시 인사드리니 ‘니 어디 갔다 왔노?’라며 기억을 하셨다.”

그는 1999년부터 이건희 회장과 가족들의 골프 레슨도 담당했다. 처음엔 어렵기만 하던 이 회장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존경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지금도 인상적으로 떠올리는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 이건희 회장한테 남의 흉을 보면 ‘왜 나한테 그 말을 하는데? 니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해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남을 헐뜯는 걸 극도로 싫어하셨다. 그리고 조연의 시각으로 보면 영화의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는 말씀도 자주 하시곤 했다. 좋아하는 영화는 주인공의 시각, 조연의 시각 등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을 보신다고 하셨다.”


1999년 KPGA 투어 부경오픈에서 우승한 강욱순(왼쪽)과 기념 촬영을 한 고 이건희 회장. 이 회장은 “너무 많이 우승하면 동료들이 시샘하지 않아~”라면서도 굉장히 기뻐했다고 한다. 사진 강욱순 프로
1999년 KPGA 투어 부경오픈에서 우승한 강욱순(왼쪽)과 기념 촬영을 한 고 이건희 회장. 이 회장은 “너무 많이 우승하면 동료들이 시샘하지 않아~”라면서도 굉장히 기뻐했다고 한다. 사진 강욱순 프로

이건희 회장은 골프를 어떤 관점으로 보았을까. 강욱순은 최근 이건희 회장이 ‘업(業)의 개념’이란 특유의 시각으로 사업을 바라보았다는 기사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이 회장은 골프장은 그린 스피드, 골퍼는 에티켓, 골프는 정확성의 게임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고 그는 기억했다.

이 회장은 안양CC가 세계적인 명문이 되려면 그린 스피드를 3m 이상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당시 국내 골프장 그린 스피드는 대개 2.4m 안팎으로 대회 때 국제 수준의 그린 스피드를 만드는 데 애를 먹었다.

“그린 스피드를 빠르게 하기 위해선 습도와 경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국내에선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었다. 자칫 그린 스피드를 빠르게 하려고 잔디를 깎고 다지면 잔디가 죽어 그린이 누렇게 되기 십상이었다. 하루는 이 회장이 안양CC 지배인을 불러서 ‘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느냐, 잔디 죽을까 봐 그러느냐. 실패하더라도 자꾸 경험이 쌓여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린 스피드를 3m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었다.”

2003년 출간된 ‘이건희 개혁 10년’에 따르면 이 회장은 “드라이버가 250야드 나가는 사람이 10야드 더 내려면 근육이나 손목의 힘, 그리고 목 힘이 달라져야 한다. 아이언을 처음 치는 사람이 50야드 내려면 아주 쉽지만, 150야드에서 160야드로 10야드 더 보내기란 제로에서 100야드 보내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선포하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말한 것과 통하는 일면이 있다.

이 회장은 1980년대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골프를 통해 후유증을 극복했다고 한다. 외부 인사들과 라운드를 하기보다는 혼자 공 몇십 개를 갖고 다니며 연습하는 걸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강욱순은 이렇게 기억했다. “한창 땐 장타에 싱글 스코어를 기록하셨다고 한다. 그린 주변 어프로치 샷을 정확한 지점에 떨어뜨릴 때까지 몇십 번이고 연습하시던 기억이 난다. 회장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에티켓과 매너를 지키는 사람은 사회생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강욱순은 하와이 가족 여행 때 식사 시간 내내 나라를 걱정하고 한국 경제와 삼성의 나갈 길을 말하던 이 회장의 모습이 지금도 새롭다고 했다. 그는 “그 영향으로 민간 투자 유치 산업으로 안산에서 강욱순 아카데미까지 하게 된 걸 보면 이 회장님은 제 인생 스승이셨다”고 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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