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박사는 “육아는 아이가 사회 구성원으로 하고 싶은 일을 편안한 마음으로 하도록 돕는 것”이라며 “부모들이 ‘긴 과정, 일관되게, 돕는다’ 이 세 마디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오은영 박사는 “육아는 아이가 사회 구성원으로 하고 싶은 일을 편안한 마음으로 하도록 돕는 것”이라며 “부모들이 ‘긴 과정, 일관되게, 돕는다’ 이 세 마디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육아 국민 멘토’ 오은영 박사가 130가지 부모의 말을 담은 육아 회화책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를 냈다. ‘부모의 말이 육아의 전부’라는 신념에서다. 최근 채널A의 육아 솔루션 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이하 금쪽이)’에서 그가 펼쳐 보이는 ‘오은영 매직’도 화제다. 오은영은 매번 상호작용의 사각지대에서 아이의 SOS 사인을 읽어냈고, 정확한 사랑의 언어로 교착 상태에 빠진 가족을 구출했다. 발톱을 세운 야생동물처럼 뒹굴고 떼쓰고 거칠고 폭력적인 아이들, 눈물짓던 부모들은 그를 만나 경이로운 반전을 이뤄낸다. 아이들은 규칙에 순응하고, 부모는 권위를 되찾는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오은영은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에 출연했다. 11년간 496명의 아이를 혼돈에서 구조했다. 그가 펼친 메시지는 하나로 모인다. “아이는 좋은 말로 하면 안 들을 것 같지만 좋은 말로 해야 듣는다.” 가정에 사랑의 질서를 잡아주는 국민 해결사를 만났다. 오전 9시. 여왕처럼 세팅된 머리, 실로폰처럼 높고 화사한 목소리에 머리가 시원해졌다.


‘육아 회화’라는 콘셉트가 신선했다. 훈육 언어도 외국어 대하듯 작심하고 외워야 한다니, 놀랍다.
“맞다. 사실 부모의 사랑은 의심할 수 없다. 나만 해도 이젠 다 커서 180㎝, 120㎏인 아이가 여전히 사랑스럽다. 산더미처럼 덮쳐 와도 꼭 끌어안는다(웃음). 그렇게 깊게 사랑하면 모든 게 괜찮아야 하잖나? 그런데 현실은 마음만 갖고는 안 된다. 아무리 사랑해도 그 ‘사랑의 언어’를 못 배워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진실해도 상처가 생긴다. 마음만으론 안 되는 것이다. 수십 년간 현장에서 아이와 부모가 아파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러다 결론을 내렸다. 결국 말이 바뀌어야 한다. 언어가 전부다. 아이의 행동을 바꾸고 싶으면 쉽고 정확한 사랑의 언어를 써야 한다. 회화는 실천이고 실전이잖나. 외국어 배우는 자세로 ‘사랑의 말’을 배워보자는 거다.”

살짝 비틀기만 했는데 그 각도에서 아이가 숨 쉴 겨를이 생겨나더라. 가령  ‘뭘 잘했다고 울어?’ 대신  ‘다 울 때까지 기다려 줄게’로.  ‘징징대지 말라고 했지’ 대신  ‘뭘 원하는지 말하기가 좀 어려워?’로. 침착하고 평온한 문장을 통째로 다 암기하고 싶었다.
“외워서 익히면 좋다. 그래야 빠른 변화를 느낄 테고.”

그런데 그 화법이 나오려면, 여태껏 익숙했던 관계를 낯설게 봐야겠더라.
“정확하다! 아이는 가장 가깝고 연약한 타인이다. 그런 아이를 우리는 왜 함부로 대할까? 익숙해서다. 그런데 익숙한 게 옳은 건 아니잖나. 더 익숙해지면 대물림이 일어난다. 무서운 일이다. 상담실에서 만난 아이, 청소년, 중년, 노인까지, 모두가 예외 없이 하는 말이 뭔지 아나? ‘부모가 준 상처’다.”

상처를 차단하는 기본 문법이 있을까.
“무조건 아이 감정부터 받아줘라. ‘속상하겠다. 힘들지? 밥 먹으면서 의논해 보자. 방법이 있을 거야.’ 시험 못 치고 밥도 안 먹는 아이에게 ‘그러길래 뭐랬어? 열심히 하랬지’ 불필요한 말로 짜증에 기름 부으면 안 된다. 청소 못하는 아이에게 ‘방이 돼지우리인 거 친구들도 아니?’ 드라마틱하게 모멸감 주지 마라. ‘우리 아들, 정리하는 능력은 좀 약하네. 잘하는 게 더 많으니까 큰 문제는 아니지만, 정리 정돈이 너무 안 되는 것 같아. 고칠 수 있는 건 고쳐볼까?’ 차분히 말해줘야 한다.”

소모적인 대화 말고 그 상황에서 필요한 말만 하라고 당부했다. 아이에게 하는 말이지만, 자주 염려하는 내 속의 ‘작은 나’에게 해주는 말처럼 들린다.
“정확한 표현이다. 아이를 이해해야 인간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한다. 모든 관계의 기본은 부모와 아이의 대화에서 시작한다. 그런 면에서 육아 회화는 사실은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아이에게 들려주는 거다.”

‘버럭버럭하지 않고 분명하게’라는 가이드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대체로 많은 갈등이 ‘흥분해서 중언부언하다’ 산으로 갈 때가 많다.
“교육은 인간다움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칸트가 그랬다. 배움의 목적은 오직 ‘인간다워지는 것’이라고. 그런데 성급한 부모는 착각한다. 따끔하게 야단쳐야 정신 차릴 거라고. 아니다. 머릿속에 ‘혼낸다’라는 말부터 지워라. 야단치고 겁주는 건 그냥 부모가 자기 조절이 안 되는 거다. 사랑과 존중의 자리에 굴복이나 복종을 두면, 그건 교육이 아니다. 무서워서 따라올 뿐. 단언컨대 의미도 효과도 없다. 게다가 그런 공포의 메커니즘은 중독성이 있다. 아이는 맷집이 늘고 부모는 더 세게 바닥을 친다.”

그럴 땐 아이가 내 안의 괴물을 꺼내는 것 같다.
“당신의 화, 당신의 걱정이 당신을 잡아먹은 거다. 버럭버럭하면 화는 도드라지고 내용은 불분명해진다. 내용 전달력이 떨어져서 아이 머릿속엔 부모의 화난 얼굴만 남는다. 그걸 모르니 양육자는 ‘몇 번을 말해? 또! 또! 또!’ 하며 다그치고. 좋게 말하면 안 들을 거라는 짐작을 버려라. 좋은 말로 가르쳐라! 철학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 아이들은 좋게 말해야 듣는다.”

탯줄 끊어지면 남. ‘아이는 생각과 감정이 다른 존엄한 타인’이라는 분별을 잊지 말라고 했다. ‘금쪽이’를 보면 항상 관찰 카메라 속 아이의 상태를 정확하게 읽어내더라. 당신의 눈은 무엇을 보고 있나.
“(활짝 웃으며) 아이는 항상 부모에게 표현한다. 찡그린 얼굴, 닫아버린 입… 그런 현상 안에 양파껍질처럼 아이의 의도가 숨어있다. 의도가 뭔지를 읽어야 한다. ‘금쪽이’ 1회에 나온 민호는 거친 말과 행동으로 분노조절장애라며 눈총을 받았다. 가까운 사람과 친밀감을 나눠야 하는데 그 그릇 자체가 비어있었던 거다. 상호작용이 회복된 후 아이는 180도로 달라졌다. 산에 올라갈 때 엄마 손도 잡아준다(웃음). ‘똥꼬’가 아픈 아이도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거였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제발 도와주세요!’ 그 구조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된다. 반복되는 문제 행동은 관찰하고 탐문하고 성찰해야 한다.”


오은영 박사는 “훈육은 아이를 당장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일관되게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오은영 박사는 “훈육은 아이를 당장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일관되게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어린아이를 훈육하는 모습이 말썽꾸러기 반려견을 코칭하는 과정(KBS‘개는 훌륭하다’)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기다리는 것과 행동의 한계를 정해주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여럿이 같이 살아야 하잖나. 생태계의 동식물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면서 다른 생명체의 자리를 건드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여럿과 다 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평화롭게 지내려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그게 생활의 질서고 그걸 가르치는 게 훈육이다. 개도 고양이도 사람도 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침범하면 안 된다. 그 규칙의 기본이 ‘기다리는 것’과 ‘안 되는 것’이다. 적절한 통제, 한계 범위를 알려줘야 자기 조절력이 생긴다. 다만 그걸 가르칠 때 눈 부릅뜨지 말고, 덕으로 가르치라는 거다.”

그런데 가르칠 때는 말을 길게 하지 말라고 했다. 훈육에서 미니멀리즘이 왜 중요한가.
“놀이할 땐 말을 많이 하는 게 좋다. 한계, 경계, 통제를 가르칠 땐 길게 늘어놓는 건 금물이다. 짧게는 10단어, 길어도 30음절이 넘으면 안 된다. 왜냐? 잔소리는 감각이 예민한 아이를 짜증스럽게 한다. 문제 상황 생기면 딱 끊고 ‘여기서 오늘 뭘 가르칠까?’에만 집중해야 한다. 일단 감정 수긍이다. ‘알겠어! 네가 장난감 좋아하는 거 알지. 안 사주면 속상할 거야. (전환) 그런데 원할 때마다 다 사줄 순 없어. (결론) 오늘은 안 돼!’ 이후 소리 지르고 난리 치면 진정할 때까지 반응하지 마라. 징징대도 휘말려서 말꼬리 물면 안 된다.”

‘기다려!’와 ‘기다려주는 것’을 동시에 구사해야 하니, 부모 입장에서는 감정적으로 중노동이다.
“그래서 부모는 실수할 수밖에 없다. 못 참고 격분한다(웃음). 그래도 또 해보는 거다.”

때론 아이가 부모를 떠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가르칠 때 부모는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하나.
“아이가 불행감을 통과하도록, 묵묵히 바라봐줘라. 아이는 그런 부모의 인내를 디딤돌 삼아 체념을 배운다. 체념은 나쁜 게 아니다.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 불편을 수용하는 능력이다. 할 수 있는데 안 해버리는 포기하고는 다르다.”

활화산처럼 역동하던 욕구가 서서히 사그라지는 그 과정은, 보는 자체로 눈물겹다. 자기 감정에 화상을 입지 않도록, 부모는 안전한 냉각수가 되어 아이의 해열을 돕는다. 어떤 것은 해야 하고 어떤 것은 해서는 안 되는지… 부모와의 힘겨루기를 통해 아이는 체념을 배운다.

훈육에서 고쳐야 할 노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한 번에 다 해결하려는 노력. 작은 일은 작게 끝내라. 별일 아닌 걸 확대 해석해서 ‘기승전 망한 육아’로 만들지 마라. 틀리면서 조금씩 배우는 거다. 예컨대 아이가 양치 안 하면, 그것만 다뤄라. ‘저러다 이가 다 썩고 사춘기엔 반항아가 되겠지’ 비약해서 완력으로 목욕탕에 끌고 가지 마라. 부모가 매 순간 너무 비장하면 아이는 편안히 배울 수 없다. 육아는 긴 과정이다. 나침반과 별이 그 자리에 있으면, 오늘 좀 헤매도 다시 제 길로 돌아온다. 훈육은 당장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일관되게 방향을 알려주는 거다.”

‘누구의 과제인지 분별하라’던 심리학자 아들러가 떠오른다. 아들러 심리학의 대가로 ‘미움받을 용기’를 쓴 기시미 이치로 선생은 아이에게 ‘내가 도와줄 게 있을까?’ 먼저 묻고 ‘없다’고 하면 간섭을 멈추라고 했다. 육아의 목표는 자립이라고.
“맞다. 육아가 뭘까? 사회 구성원으로 하고 싶은 일을 편안한 마음으로 하도록 돕는 거다. ‘긴 과정, 일관되게, 돕는다’ 이 세 마디를 기억해라. 부모들은 묻는다. 잘 키우려면 뭐가 중요하냐? 난 무조건 마음이 편안한 사람으로 키우라고 한다. 가까운 사람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사람이면 족하다고. 그 과정에서 부모는 아이의 특성을 파악해서 타당하게, 도울 뿐이다.”

당신의 책과 내 삶을 통해  ‘아이가 부모를 정말 사랑하는구나’를 깨닫게 된다.‘아이는 웬만하면 부모를 용서하는구나.’ 우문이지만 아이는 어떻게 그토록 부모를 사랑할 수 있을까.
“(반짝이는 눈으로) 부모는, 아이에게 생명 그 자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이의 생존을 돕는다. 절대적이다. 아이는 자기를 위해서 부모를 용서한다. 본능이다. 아이의 두려움 중 가장 큰 게 뭔 줄 아나? ‘사랑을 잃을까 봐.’ 아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부모를 사랑한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 손을 놓아도 아이는 금세 다시 잡는다. 금방 용서해준다. 아이의 용서가 어른을 죄책감에서 구원한다. 참으로 위대한 힘이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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